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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신태희 간찰(申泰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122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4년 신태희 간찰 / 申泰熙 簡札
- ㆍ발급자
-
신태희(申泰熙,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904년 7월 23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甲辰七月卄三日
- ㆍ형태정보
-
점수:크기: ×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갑진년(1904) 7월 23일에 척제(戚弟) 신태희(申泰熙)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戚弟’라고 표현하여 인척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수신자는 미상이다. 『고문서집성』 97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종가편」에 실린 <1903년 신태희(申泰熙) 서간(書簡)> 등을 참조하여 이 간찰의 발급연도를 1904년으로 추정하였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상대가 그립고, 여름의 혹독한 더위가 어느덧 물러나 가을의 서늘함이 생겨난 이때에 객지에 나와 있는 상대의 안부는 어떠한지, 고향 소식을 이것저것 듣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자신은 원래 있던 병에 여독까지 더쳐 쇠한 모습으로 살지만 아이들은 큰 탈을 면했고, 각처의 대소가도 별고는 없지만 요즘 같은 시절에 살아갈 방도가 없다는 등을 언급하였다. 충 아(忠兒)의 혼례는 3월에 치르고 바로 우례(于禮)를 행했으니 늘그막 살아가는 재미라고 하였고, 나머지 자식들은 부질없이 놀기만 하니 걱정된다고 했다. 누원(樓院) 댁 안부는 좋지만 자신은 여태 다른 집으로 떠돌이 생활만 한다고 하면서 내년 정월에 있을 회갑이 어찌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간에 혹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낙성(洛城)을 경유하여 상대와 만나고자 하지만 아직 상대의 소식이 없어 답답하다고 했다. 추록에는 서흥(瑞興) 수령이 이미 선유사(宣諭使)를 겸했고, 수령으로 다스리고 있을 듯 하지만 내려갈 때의 수령은 누가될지 모른다고 하는 등의 내용이 있다. 본문의 추록에서 언급한 일은 정확한 사정을 모르지만 수신자를 위해 고을 수령에게 어떠한 부탁을 하고자 발급자가 힘을 쓰는 모습으로 추정된다. 또한 혼례에 관한 언급이나 자신의 회갑을 어찌 치를지 모르겠다고 하는 내용 등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의 단편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신태희는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다만 『고종실록(高宗實錄)』‧『순종실록(純宗實錄)』‧『승정원일기』 등에 실린 동일 인명의 인물 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종 15년(1878)에 춘당대에서 열린 입직 무사(武士)의 시사(試射)에서 무용위(武勇衛) 남행 선전관(南行宣傳官) 신태희 등이 사제(賜第)되었고, 고종 23년(1878) 전라우도수군절도사에 제수, 고종 39년(1902) 종2품 신태희를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제수, 고종 42년(1905) 7월에 육군참령(陸軍參領) 신태희를 평안남도관찰사에 제수, 같은 해 8월에 충청북도관찰사에 제수, 고종 43년(1906)에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에 임명하고 칙임관 3등에 서임되었다가, 순종 1년(1907) 7월 26일에 ‘무관 가운데 현 보직이 없는 인원의 장령(將領)‧위관(尉官) 직명을 해면하라’는 칙명이 내려져 참령 신태희, 일등군사(一等軍司) 정봉림(鄭鳳林) 등이 해면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봉림은 신태희와 함께 이 문중에 발급한 간찰이 있으므로 위 인물을 발급자로 유추하였지만 확실하지 않다.
- · 『高宗實錄』 『純宗實錄』 『承政院日記』 국사편찬위원회, 『고종시대사』 4집, 1966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조선‧대한제국 관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주한일본공사관기록 & 통감부문서)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한국근현대인물자료, 대한제국관원이력서) 율곡연구원,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3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서도기획, 2020.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집성』 97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종가편」(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참고자료
원문
積阻雖緣勢也詹詠耿耿夢想勞止今夏酷熱若近初有於焉秋凉已生伏惟比來旅體萬旺鄕信種種承聆而覊熱餘以堪爲仰溯且祝戚弟病着餘憊尤是衰狀難支而稚曺免大恙用是爲慰各處大小家亦無別故然如今之世計活沒策是爲强顔耳忠兒婚禮三月過行亦卽于禮是爲老境滋味而豚輩俱爲浪游可悶可悶樓院宅諸節姑安寧而尙此棲屑他家切迫切迫回甲在於來年正月將未知何爲耳其間或不作鄕駕耶若或爲之必路由洛城意謂相敍而若是寂然無聞甚菀甚菀爲探不備上甲辰七月卄三日戚弟申泰熙拜手瑞興倅旣兼宣諭使亦按守令治否而下往時主倅自政座多雌黃云故雖無面則爲兄主作客故未嘗不言誦矣果無事耶覽卽付丙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