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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김연교, 김연효 간찰(金演敎, 金演孝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103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위장(慰狀)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 김연교, 김연효 간찰 / 金演敎, 金演孝 簡札
- ㆍ발급자
-
김연교(金演敎, 1826~?, ,)
김연효(金演孝, 1841~?)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2년 11월 1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 十一月 十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5.5 × 38.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62년 11월 15일에 고애자(孤哀子) 김연교(金演敎, 1826~?), 김연효(金演孝, 1841~?) 형제가 상대의 상을 위로하고 안부와 근황을 전하고자 발급한 위장(慰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62년 11월 15일에 고애자(孤哀子) 김연교(金演敎, 1826~?), 김연효(金演孝, 1841~?) 형제가 상대의 상을 위로하고 안부와 근황을 전하고자 발급한 위장(慰狀)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孤哀子’로 표기하여 당시 친상(親喪)을 당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신자의 경우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고, 본문에서 유추할 만한 단서가 부족하여 미상이다. 다만 언급된 망자를 ‘生庭先夫人[生母]’으로 표현하였고, 창녕조씨 명숙공가의 조인환(曺仁煥)의 모친이 발급자와 같은 본관인 강릉김씨(江陵金氏)이므로 수급자는 이 문서의 소장 문중인 창녕조씨 일원 가운데 출계(出系) 한 인물로 추정되나 미상이다.
뜻밖의 흉변으로 상대의 생가 선부인의 상을 당하게 되어 부고를 받고 놀라고 슬픈 마음이 그지없다고 하면서, 효심이 지극한 상대는 그립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지내겠냐고 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양례(襄禮)를 지냈으니 애통한 마음이 망극할 것이라고 위로하며 상대의 안부를 물은 뒤 억지로라도 음식을 더하여 예제에 따르라고 당부하였다. 자신들은 최마복(衰麻服)을 입고 있는 상황에 상대에게 달려가 직접 위로할 수 없음을 알렸다.
발급자 김연교, 김연효는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현재 남아있는 <김병혁(金秉爀) 준호구(準戶口)> 약 6여 건 및 <1864년 김연교(金演敎) 준호구> 1건 등의 자료를 통해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발급자 2인은 형제지간으로 본관은 강릉(江陵), 부친은 김병혁, 모친은 안동권씨(安東權氏)이다. 윗대로 조부는 김학윤(金學胤), 증조는 김계택(金啓澤), 외조는 안동 권한벽(權漢璧)이다. 또한 김연교의 배위는 강릉최씨(江陵崔氏)로 경진년(1820)생이고, 김연효의 배위는 광주노씨(光州盧氏)로 경자년(1840)생이다. 당시 거주지는 강릉대도호부 신리면(新里面) 교항리(橋項里)였음을 알 수 있다. 보통 친상을 당한 상주가 사용하는 어휘로 ‘孤哀子’, ‘荒迷不次’ 등이 있고, 문두에 ‘省式’류, ‘稽顙’류의 투식을 사용하며 서찰을 의미하는 ‘書’나 ‘狀’ 대신 주로 ‘疏’를 사용한다. 이 위장은 발급자와 수급자 모두 친상을 당한 상주로서 이러한 투식에 맞게 어휘를 안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당시 행해졌던 상제의 한 단면 및 위장의 격식 등을 확인할 수 있다.
- · 율곡연구원, 『강원국학자료총서03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서도기획, 2020.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한국학자료센터 강원권역센터
참고자료
원문
演敎等稽顙再拜言 不意凶變 生庭先夫人奄違色養 承訃驚怛 不能已已 伏惟孝心純至 思慕號絶 何可堪居 日月流邁 遽經襄奉 哀痛奈何 罔極奈何 不審自罹荼毒 氣力何似 伏乞强加疏食 俯從禮制 演敎 衰麻在身 末由奔慰 其於憂戀 無任下誠 荒迷不次 謹奉疏 伏惟鑒察 不備謹疏 壬戌 十一月 十五日 孤哀子 金演敎 演孝 等 疏上 碩士 本生 至孝 哀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