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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원세범, 원세순 위답(元世范, 元世洵 慰答)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1029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위답(慰答)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2년 원세범, 원세순 위답 / 元世范, 元世洵 慰答
- ㆍ발급자
-
원세범, 원세순(元世范, 元世洵)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석사(沈碩士)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2년 2월 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崇禎紀元後五 壬申 二月 八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0.3 × 24.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先妣 喪事에 대해 보내는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임신년(1872) 2월 8일에 심제 애자(心制哀子) 원세범(元世范), 원세순(元世洵, 1832~?) 형제가 친상을 당한 자신들에게 위장을 보내준 상대에게 그간의 안부와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자신들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으로 보면 상대와 평교간 이상이면서 상대에 대해 ‘心制哀子’로 표기하여 당시 친상(親喪, 哀子)의 심상(心喪, 心制)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봉은 두 건으로 모두 전면에 ‘沈 碩士碩士座前 狀上’이라고 적고 있어 수신자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의 아랫대 가운데 어느 인물로 추정된다. 또한 ‘석사’는 일반적으로 관직이 없는 일반 선비에 대한 존칭으로, 이를 두 번 쓴 것은 수신자가 형제로서 2인이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발급자 원세범의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그의 아우이자 발급자로서 연서한 원세순은 자는 윤장(允章), 호는 춘정(春汀), 본관은 원주(原州), 부는 원석형(元錫亨)이다. 1874년(고종11) 증광시 진사 3등으로 입격하였고, 음직으로 금부도사(禁府都事)‧주부‧경모궁령(景慕宮令)‧공조정랑‧음성현감(陰城縣監) 등을 지낸 이력이 확인된다. 이 간찰은 상대의 위장(慰狀)에 대한 답장으로 보통 위장의 격식과 동일하게 작성되었다. 피봉은 별도의 중봉(重封)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태 상 세로 길이가 내지와 같은 피봉이 단봉, 이를 반으로 접은 길이의 피봉이 전체를 감싼 중봉으로, 내지가 든 단봉을 반으로 접은 뒤 중봉 안에 봉입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발급자가 스스로 표현한 ‘심제’는 보통 모상(母喪)에 자식은 자최(齊衰) 3년복을 입어야 하지만 부재모상(父在母喪)의 경우 부친이 상주가 되어 자식은 기년복을 입게 되므로 복을 벗게 된 뒤에도 남은 상제 기간 동안 심상(心喪)을 지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당시 행해졌던 상제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발급자 자신들은 죄역(罪逆)이 심한데도 죽지 않아 그 화가 어머니에게 미쳐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오장[五內]이 무너지는 듯 슬프다고 하면서, 세월이 흘러 어느덧 담제(禫祭)를 지내게 되었다고 하였다. 상대가 특별히 보내준 위문편지를 받으니 매우 감사하다고 언급하고, 상대를 만나 슬픔을 부르짖고 하소연 할 길이 없어 더욱 슬프다고 했다. 끝으로, 황미(荒迷)하여 이만 줄인다고 하였다.
- · 『承政院日記』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참고자료
원문
世范世洵叩首 世范世洵罪逆深重 不自死滅 禍延先妣 攀號擗踊 五內分崩 叩地叫天 無所逮及 日月不居 奄踰禫事 偏罰罪深 苟存視息 特承慰問 哀感良深 末由號訴 不勝隕絶 謹奉狀 荒迷不次 謹狀 崇禎紀元後五 壬申 二月 八日 心制哀子 元世范 世洵 狀上 沈碩士碩士座前
沈碩士碩士座前 狀上 心制哀子 元世范 世洵 謹封
沈碩士碩士座前 狀上 心制哀子 元世范 世洵 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