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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추정) 김연교 외 위장(金演敎 외 慰狀)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102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위장(慰狀)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추정) 김연교 외 위장 / 金演敎 외 慰狀
- ㆍ발급자
-
김연교 외(金演敎 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원탁(沈遠鐸, 1826~1868)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十一月十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7.3 × 29.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先府君 喪에 대해 보낸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62년(추정) 김연교(金演敎)와 연효(金演孝) 등이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의 아들인 심원탁(沈遠鐸, 1826~1868)에게 쓴 위장이다. 1864년의 강릉대도호부 준호구에 따르면 김연교는 강릉 김씨로 1826년 생이며 부인은 강릉최씨며, 아우인 김연효도 같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와 있다. 1864년 당시에 노비는 총 9구인데 이 중 3인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연교의 부친은 김병혁(金秉爀)이고 조부는 김학윤(金學胤)이며 증조부는 김계택(金啓澤)이고 아들은 1854년 생이다. 이 간찰을 쓸 때 김연교의 나이는 37세였을 것이다. 위장이므로 A004_01_A01024_001과 형태가 흡사하다. 다만, 이 글에서는 부친상이므로 선부군(先府君)이라 하고 있다. 심능규는 1862년 8월 13일에 사망했으므로, 약 3개월 뒤에 쓴 위장이다. 도독(荼毒)은 심한 고통이라는 뜻으로 부친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최마(衰麻)는 상복을 가리키며 자신이 상중에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애전(哀前)은 상중에 있는 사람의 이름 아래에 붙여 쓰는 말로, 같은 의미의 단어로 애좌(哀座) 혹은 애차(哀次)가 있다.
연교 등은 머리를 조아리고 두 번 절한 후 말씀드린다고 하고는 위장의 투식에 따라 글을 쓰고 있다. 선부군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어 부고를 받고는 놀랍고 슬픔을 그칠 수 없다고 하고, 효심이 지극한 심원탁의 사모하는 마음으로 애타게 울으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고 했다. 돌아가신 후 이미 세월이 흘러 장례를 지냈으니 애통함을 어쩌겠는가, 망극함을 어찌하겠는가라고 했다. 부친상을 당해서 기력은 어떤지 묻고 그래도 힘써 소식을 먹으라 하고, 예제를 잘 따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자신도 상을 당해 가서 조문할 수 없으니 마임을 가눌 수 없다고 했다. 끝으로 황망하여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다고 하고 살펴달라는 말과 서식을 갖추지 못하고 위장을 올린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원문
演敎等 稽顙再拜言 不意凶變 生庭先府君 奄違色養 承訃驚怛 不能而已 伏惟孝心純至 思慕號絶 何可堪居 日月流邁 遽經襄奉 哀慟奈何 罔極奈何 不審自罹荼毒 氣力何如 伏乞强加疏食 俯從禮制 演敎衰麻在身 末由奔慰 其於憂戀 無任下誠 荒迷不次 謹奉䟽 伏惟鑑察 不備謹䟽
壬戌十一月十六日 孤哀子 金演敎演孝等 䟽上
碩士 本生大孝 哀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