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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김일연 간찰(金逸淵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946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김일연 간찰 / 金逸淵 簡札
- ㆍ발급자
-
김일연(金逸淵, 1787~1866,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8 × 4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김일연(金逸淵)이 심능규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낸 답장이다. 김일연은 1787년 출생하였고, 자는 임지(任之),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순조 10년(1810년) 문과에 급제한 후 대사간(大司諫), 공조참판(工曹參判) 등을 역임하였는데, 1833년 1월부터 1835년 3월까지 강릉부사로 근무하였다. 이 답장은 강릉부사를 지낸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갑자기 소식이 막혀 서운하였는데 서신을 받아 요사이 건강이 좋다는 소식을 들으니 위안이 그지없다고 하면서도 전염병이 점점 더 심해질 우려는 없냐고 여쭈었다. 자신의 상황은 예전 그대로라 하며 자신의 안부를 전했다. 방금 고을에 사는 승호인(升戶人)이 서울에서 내려오는 편에 이번 달 18일에 집에서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큰집 작은집 모두 평온하다고 하니 기쁨과 다행스러움이 비할 바가 없다고 하였다. 서울 소식으로 17일에 세실(世室)에서 진하(陳賀)한 후에 대축(大祝 홍종응(洪鐘應)과 예방승지(禮房承旨) 권돈인(權敦仁)을 가자(加資)하는 등 관료들의 승진과 사면, 교체, 등용에 대해 일일이 알렸다. 심(沈)의 일은 5일 서울에 있는 형의 말이 옳으니, 곤장을 치고 옥에 가두라고 하더라도 수소문하여 잡아오는 것을 고려하면 날짜가 5~6일에 불과하니 그가 어찌 겁을 먹겠냐고 하면서 일찍 도모하지 못한 것이 한이라고 하였다. 윤행임(尹行恁)은 관작이 다시 회복되었다고 하였다.
원문
拜謝上.
乍阻悵仰, 卽拜審間
者,
兄候萬重, 仰慰. 何等廓
憂, 更無熾漸之慮否. 弟狀如
昨, 而俄於此邑升戶人下來
便, 得見今十八出家信, 則大小家
內均平, 喜幸何喩. 京耗, 十七日
入世室陳賀後, 大祝洪鐘應, 禮房
承旨權敦仁, 並加資. 別歲抄金基
叙放, 李肇源·趙時偉·具翼遠·李東遠罪名爻
周, 金鏴·金魯敬·宋成龍·申允祿·韓植林, 並蕩
滌敍用耳. 兵判疏遞, 其代金在昌爲
之, 完伯疏遞, 其代金興根爲之耳.
閔基事, 事旣如此, 則都置之無妨矣.
沈也事, 五日京兆之兄言是矣, 雖杖
囚之境, 除其推捉日子, 不過五六日, 彼
豈有畏㤼哉. 恨不早圖也. 餘擾甚,
姑不備謝. 尹行恁復官爵耳.
卽 弟逸淵 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