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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이철상 간찰(李轍相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900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90년 이철상 간찰 / 李轍相 簡札
- ㆍ발급자
-
이철상(李轍相,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90년 11월 11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庚至十一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1.2 × 36.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경인년(1890년 추정) 11월 11일에 죄생(罪生) 이철상(李轍相)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罪生’로 표기하여 상대보다 연배가 낮으면서 당시 친상(親喪)을 당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신자의 경우 별도의 피봉은 전해지지 않고, 발급자의 이력이 자세하지 않으며 본문에서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없어 미상이다. 지난번 상대와 만났다가 헤어진 뒤로 여전히 위로와 서운한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면서, 어버이 모시며 지내는 상대의 안부가 좋은지 물었다. 자신은 지난 그믐에 고향으로 내려와 상제(祥祭, 常事)를 지내고 나니 무너지는 슬픔에 더욱 돌아가신 어버이가 그립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제야 겨우 감영으로 돌아왔는데, 결국 내아(內衙, 妻)의 상변(喪變)까지 당해 슬프고 분주하게 날을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이 간찰의 발급 연도는 단지 ‘경(庚)’만 표기하고 있다. 동일 발급자의 여타 문건 가운데 경인년(1890) 9월 17일에 발급된 번 간찰에서도 스스로 ‘죄생’으로 표기하고 있으므로 이를 통해 1890년으로 추정하였다. 발급자 이철상은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다만 동일 인명이 『승정원일기』에서 고종 연간에 오위장(五衛將)‧북소위장(北所衛將)을 역임한 이력이 확인되므로 이 간찰의 발급연도인 ‘경인년’을 1890년(고종27)으로 추정하였다. 번 간찰에서 ‘선당(宣堂, 감영)’을 언급한 것으로 보면 당시 모처의 관찰사를 지낸 이력이 있는 인물일 수 있다. 두 건의 문건을 종합 해 보면 9월에는 모처의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다가 친상을 당하게 되어 말미를 받고 10월 그믐에 고향으로 내려왔다가 11월 11일 경에 다시 감영에 복귀한 경위를 추정할 수 있다.
- · 『承政院日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참고자료
원문
稽顙頃者逢別尙切慰悵謹詢至沍侍體事護旺哀溯攢祝罪生去晦作鄕行奄過常事哀隕益復靡逮而今纔還營竟遭內衙喪變送終巨創悲擾度了耳餘留另荒迷不次疏禮
庚至十一日罪生李轍相稽拜
謹拜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