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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 김노겸 간찰(金魯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67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0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50년 8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庚八初旬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6.2 × 4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경술년(1850) 8월 10일 김노겸(金魯謙, 1781~1853)이 심능규(1790~1862)에게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을 알리기 위해 쓴 답장이다. 간찰에는 편지를 적은 해에 대한 간지를 ‘경(庚)’자 하나만 적어 두었지만, 편지 속 조보(朝報)의 내용을 통해 1850년(경술)임을 확정하였다. 조보는 승정원에서 매일 아침 조정에서 처리된 일들을 적어 돌리는 소식지이다. 편지 서두에는 서늘해진 가을에 상대방에 대한 그리움과 안부 인사를 하고 자신은 설사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아이의 소식과 집안의 크고 작은 우환으로 걱정이 있다고 하였다. 그믐날 전에 경릉(景陵)으로 행차할 것이며, 상대방의 부탁에 대해 삼가 시행할 것이나 실효가 없을까 걱정된다고 답하였다. 그리고 이 대감이 가솔을 데리고 올라간 소식을 전하였고 재종질이 갈 것이라 하니 소식을 전할 계획이라 하였다. 그리고 조보에 수록된 이학수(李鶴秀, 1780~1859)가 자헌대부로 승진하여 사은 숙배하고 김흥근(金興根, 1796~1870)은 지실록사(知實錄事)로 사은 숙배하였으며(『승정원일기』1850년 3월 8일), 이기연(李紀淵, 1783~?)은 내의원 제조(『승정원일기』1850년 8월 5일)에 낙점되어 사은을 재촉 받았지만 그 아우 나주의 장례를 치르기 전이라 숙배하러 나오지 않았던 일 등을 적었다. 『승정원일기』와 『방목』 등을 통해 살피면 이기연의 동생으로 이회연(李晦淵, 1779~?)과 이래연(李來淵)을 찾을 수 있는데, 1837년 3월 22일에 나주 목사를 지낸 이는 이회연이다. 나주 목사를 지내서 아우를 ‘나주’라 칭한 것인지 나주에 기거하여 ‘나주’라 칭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아마 당시에 이기연의 동생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이름을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편지 마지막에 잦은 설사로 진원지기가 크게 손상이 되어 대략 답장한다며 편지를 마쳤다. 경릉은 조선 제24대 왕 헌종(憲宗 1827~1849, 재위 1834∼1849)과 비 효현왕후(孝顯王后) 김씨(1828~1843),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1831~1903)의 무덤으로 구리 동구릉 건원릉(健元陵 태조의 무덤) 서쪽에 있다.
원문
積澇初收新涼乍動此時懷仰益復萬倍伏拜惠狀備審邇來兄體萬護慰仰萬萬弟泄痢作苦已極可悶而兒子消息久未聞之家內大小憂患不一而足此生良苦自憐奈何一篇古風諷詠再三披覽神爽然鑑湖五月涼猶帶得塵寰一點熱是爲可欠景陵之行晦前當爲之敎事當依戒爲之爲計而但恐徒費無效是悶是悶李台率家上來云然則今年內恐無遞改之理而亦何可的知也再從姪仵所去云當信傳爲計耳京耗別無可聞者設有可聞者非朝紙所出豈可相傳耶若朝紙所出則李台鶴秀陞資憲已爲肅謝金台興根知實錄謝恩李台紀淵今又以內局提擧促令謝恩以其季羅州葬前姑未出肅云耳餘數數暴泄眞元大下收拾不得略此不備謝禮李台果無相通之路耶弟則不知或有聯臂相通之道而恐不足有無也機浦兒子憂患一味薰心奈何奈何庚八初旬謙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