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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김노겸 간찰(金魯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66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9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9년 2월 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己酉二月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 × 40.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기유년(1849) 2월 2일에 김노겸(金魯謙)이 아무개에게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을 알리기 위해 쓴 답장이다.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자신은 그럭저럭 지낸다는 안부를 전했다. 재종(再從)의 유환(宥還 귀양갔던 죄인이 용서받고 돌아옴)을 축하하며, 상언(上言)한 일은 마땅히 경계하나 십분의 일도 믿을 수 없어 쉬이 헛된 일이 될 수 있다며, 만일 헛된 일이 되면 온갖 노력을 들이고도 깜깜한 곳에서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쓸모없는 일이 될까봐 매우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경과(慶科)가 4월 20일로 정해졌으며, 문(文)·음(蔭)·무(武)반에서 기유년(1789)에 태어난 황호민(黃浩民, 1789~?), 정덕화(鄭德和, 1789~?), 김기묵(金箕黙, 1789~?) 등에게 가자(加資)하였고, 완백(完伯 전라 관찰사)에 남병철(南秉哲, 1817~1863)을 임명하였다. 총위사(摠衛使) 서희순(徐憙淳)이 소체(疏遞)하여 훈련대장[訓將] 이응식(李應植)을 총위사로 삼고, 훈련대장에는 금위대장[禁將] 임성고(任聖皐, ?~?)를 삼고, 금위대장에는 새로신관호(申觀浩), 총위영에 제조 한 명을 신설하여 서희순에게 겸대하게 하였다. 이조판서가 소체하여 이약우(李若愚, 1782~1869)를 이조판서로 삼았다. 세초(歲抄) 중에 조병현(趙秉鉉)을 서용하고, 이목연(李穆淵)을 탕척(蕩滌)하며,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직첩(職牒)을 돌려주었고 병조판서가 소체하여 해백(海伯 황해 감사)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을 병조판서로 삼았다는 소식을 적었다. 그리고 태백성이 사지(巳地 남동쪽)에서 수십 일 보이고 초하루에는 일식이 있던 일 등도 적으면서 그밖의 일을 다 적지 못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추신으로 서울에 홍역이 유행하여 죽은 사람이 많으며, 집안과 조카네 윤 사돈네도 모두 고통을 겪고 있어 몹시 걱정스러운 맘을 전하였다.
원문
歲新懷益新得拜耑翰備審新元兄候迓休百福可謂新年單傳喜消息曷任慰賀萬萬弟古我今我祗是成就得一箇陳人而已自憐奈何前書未及奉呈有洪喬之患耶再從宥還闔門祝手感泣如何盡言上言事第當如戒而但非十分可信易致歸虛若或歸虛雖費百般精力可謂暗中瞬目是甚悶然悶然矣 就第相機爲之計耳京耗每得一一錄送耶慶科定以四月卄日文蔭武己酉生準職人加資黃浩民鄭德和金箕黙諸人爲之完伯南秉哲爲之摠衛使徐憙淳疏遞訓將李應植爲之訓將則禁將任聖皐爲之禁將則新通申觀浩爲之摠衛營新設提調一員徐憙淳兼帶吏判疏遞李若愚爲之歲抄中趙秉鉉敍用李穆淵蕩滌金正喜職牒還授兵判疏遞海伯尹定鉉爲之云而姑未見文蹟不可準信而似或無怪矣太白見於巳地數十餘日今朔日有食之此外不能盡記悉牒以呈耳餘傳盡姑不備謝禮己酉二月二日弟魯謙拜京中紅疫大熾死亡亦多可怕可怕家內與從子家尹査家見方一時俱痛極悶極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