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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김노겸 간찰(金魯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57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9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 × 4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큰 상을 당한 여러 심경을 전하고 있음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기유년(1849) 7월 14일에 김노겸(金魯謙, 1781~185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 정보로 ‘謙弟’만 기록하여 이름에 ‘겸(謙)’이 들어가면서 평교간 정도 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동 문중의 여타 간찰 가운데 ‘김노겸’ 간찰이 다수 있는데, 서체 및 정황 상 동일 인물로 파악된다. 또한 수신자의 경우 동일 발급자의 여타 간찰에서의 정황이나 본문 내 ‘인경(仁經)’의 언급 등을 통해 『인경부주(仁經附註)』의 저자인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임을 알 수 있다. 국상(國喪)에 모든 신민들이 애통해 한다고 하면서, 70세의 늙은 자신은 질긴 목숨으로 죽지 않아 차마 정조 대왕의 4세 혈맥[헌종]이 하루아침에 승하하여 원통하지만, 하늘이 우리나라를 도와 사성(嗣聖, 철종)이 왕통을 잇게 되어 찬축한다는 말로 서두를 떼었다. 이어서, 뜻밖에 상대의 편지를 받고 늦더위에 상대의 안부가 좋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지난 달 6일 이후부터 숙병에다가 새로운 병까지 들어 지내는 근황을 전달했다. 상대가 부탁한 일에 관해 현재는 마음을 다해 도모할 방도가 없음을 알렸다. 이어서 상대가 언급한 ‘모충(謀忠)’과 ‘위기(爲己)’에 관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였고, 서전(西銓)은 모두 그대로인데 온 세상은 모두 바뀌었다고 언급하면서 이는 모두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하였다. 효행에 관한 일은 장례 전 동가(動駕)하는 일이 있으면 도모하겠다고 하였고, 『인경』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서문과 제목을 또한 마땅히 도모 해 보겠다고 하였다. 상대가 보내 준 송화(松花)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자신은 가난해 제사에 다식(茶食)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사용처가 없고, 이를 맛보고자 해도 반 숟갈의 청밀(淸蜜)도 없으므로 다음 인편에 꿀[白淸] 몇 되만 보내달라고 하였다. 본문에서 언급한 국상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참조하면 이 해 6월 6일에 승하한 헌종의 국상임을 알 수 있다. 헌종은 정조의 증손이므로 본문에서 ‘정조 대왕의 4세 혈맥’으로 언급하고 있다. 또한 수신자가 이전에 발급자에게 부탁 한 모종의 일에 관한 경과를 알리는 내용을 통해 발급자의 사고관이나 당시 청탁의 관행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인경』의 경우 심능규가 유가 경전 및 성리학 전적에서 인설(仁說)을 뽑아 수록‧편찬한 필사본 저서로 20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1846, 1849년에 쓴 자서(自序) 3편이 있고, 박처인(朴處仁)이 필사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간행연도는 1849년이다. 발급자 김노겸은 자는 원익(元益), 호는 성암(性菴)·길고자(吉皐子),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사헌부감찰 김사주(金師柱), 아우는 김노석(金魯錫)이다. 1814년(순조14) 식년시에 진사로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혜릉참봉‧예빈시주부‧홍산현감(鴻山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1844년(헌종10)에는 헌종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의 가례 때 설치된 가례도감의 감조관에 임명되자 당시 직명[實職]이 없는 상황에서 군직(軍職)으로 부사용(副司勇)‧부사과(副司果)에 제수되기도 했다. 1845년 홍산현감에 제수된 뒤에는 1847년에 충청우도 암행어사 송정화(宋廷和)의 서계(書啓)에 의해 조운선에 곡물을 수량대로 싣지 않았다는 등의 죄로 나추(拿推)되어 공초를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성암집』이 있다.
- · 『憲宗實錄』 『承政院日記』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사이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문검색서비스 “仁經附註” 서지 및 해제 참조.
참고자료
원문
國哀普慟罔極七十老物冥頑不死忍見我正宗大王四世血脈之一朝忽焉尤極痛冤直欲溘然滅死而已天佑我東嗣聖承統舊命維新綴旒再奠於磐泰是甚攢祝萬萬第於意外拜承惠狀謹審晩熱兄候萬重何等仰慰仰慰弟一自昨月初六以後舊病新恙一倍添苦萬念都灰一身如寄幾何其澌滅無餘也示中所敎縷縷豈不仰念而目下果無謀忠之道奈何奈何謀忠云云還慨且笑旣不能事君盡忠忍見今日而猶不滅死則奚暇念及於爲人耶然中心爲忠盡己之爲忠而今日以前每以忠實之言由中而出忠告之意溢於言外而兄猶不諒每苦逆耳初不擬意亦復奈何至於爲己云云聖不云乎古之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此則果服膺不暇而此外則惟患己私之不祛豈有妄想與妄作而營營逐逐之理耶此則可謂淺之知我好笑好笑西銓皆依舊擧世皆換面都是閒商量孝行事或有葬前動駕之事當圖之仁經姑不來而序文與題目亦當圖之而恐無別般緊妙理又安知後日不爲咋舌耶尤呵尤呵松花仰謝厚饋而顧以窮貧祀事不能用茶食假使用之今則大中小祀皆不能行果無用處欲喫之則又無半匕淸蜜其將白喫耶後便必更送白淸幾升以爲調服如何如何一呵一呵餘揮汗姑不備己酉秋七月少望謙弟拜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