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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53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十月初四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6 × 4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미상년(1844년 추정) 10월 4일에 김노겸(金魯謙, 1781~1853)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연도는 기재하지 않았고, 발급자 정보로 ‘謙弟’만 기록하여 이름에 ‘겸(謙)’이 들어가면서 평교간 정도 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동 문중의 여타 간찰 가운데 ‘김노겸’ 간찰이 다수 있는데, 서체 및 정황 상 동일 인물로 파악된다. 피봉은 별도의 단봉으로 전면에 ‘月圃回納’이라고 기록하여 수신자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임을 알 수 있다. 처음, 지난번 보낸 답장은 아직 받아보지 못했을 것인데 그간 감영으로 갔을 것이라고 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상대가 생각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상대의 부탁에 대해 모충(謀忠)의 도리를 다해야 했는데, 마음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힘이 미치지 못해서였고, 이제는 힘뿐만 아니라 생각도 미치지 못했다고 하면서, 도감(都監)에서 젊은 관원들과 분주히 일 하느라 바쁜 근황을 알렸다. 과거 20년 전 강릉(江陵)에 기거할 때를 추억 해 보면 그때는 미세한 음식도 꼭 불러서 주었던 인정이 넘쳤던 때었는데, 이제는 인사(人事)에 반의 힘도 낼 수 없으니 탄식스럽다고 했다. 가례도감(嘉禮都監)에서 직책을 맡은 일, 상대를 위해 직접 일을 도모하려 했지만 잘 성사되지 않은 상황을 등을 언급하며 오이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고 물이 이르면 도랑을 이루며, 때가 오면 바람이 등왕각(滕王閣)으로 보내주고, 운이 다하면 벼락이 천복사비(薦福寺碑)를 치는 법처럼 세간만사에 다 때가 있으니, 어찌할 수 없다는 말 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하였다. 의향(衣香) 한 쌍은 서울의 종중(宗中)에 두었는데 가례(嘉禮)가 끝난 뒤 받아 둘 것이니 인편을 보내 찾아가라고 하였다. 본문에서 언급된 상대의 부탁은 여러 정황들을 참조하면 유력자를 통한 청탁으로 추정된다. 또한 ‘가례’는 1844년 10월에 있었던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 홍씨의 가례로 추정된다. 이때 발급자는 감조관(監造官)에 제수되었던 이력이 있으므로, 이 간찰의 발급연도를 1844년으로 추정 가능하다. 『헌종실록』 등을 살펴보면 이 해 10월에 가례가 이루어졌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행해진 청탁의 실제 모습이나 오례(五禮)로 대표되는 국가례 가운데 가례(嘉禮)를 치를 때의 단편적인 사실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김노겸은 자는 원익(元益), 호는 성암(性菴)·길고자(吉皐子), 본관은 경주(慶州), 부친은 사헌부감찰 김사주(金師柱), 아우는 김노석(金魯錫)이다. 1814년(순조14) 식년시에 진사로 입격하였고, 음관으로 혜릉참봉‧예빈시주부‧홍산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성암집』이 있다.
- · 『憲宗實錄』 『承政院日記』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참고자료
원문
向復想未登照矣似於其間當作營下之行雖百忙千撓中意未嘗不在兄邊而至於爲吾兄效勞謀忠之道實非心不足乃是力不及今則非徒力不及可謂念不及今日都監曉入暮還攘臂於年少叢中倚枕於粉黛上頭每與無知沒覺之十九歲鶴仙語及後海景勝渠亦能知海雲亭以是爲慰此豈七十老物一毫有他意而然耶總是追憶二十年前舊遊以其居在江陵也故十分愛之凡於微細飮食必呼而給之甚矣朝鮮卽是人情國也以此人情今於故人事不能出半臂力豈不咄咄歎歎之甚耶雖以吾兄善恕必以我爲無情而此非無情也乃無勢也斷斷此心可質神明耳鞠事今雖出場而似於嘉禮都監之設督任雖相逢於公會眞所謂可望不可親間又一兩次圖謀躬往而卿宰滿座未免門外客此將奈何好發一笑責答亦爲前後四次而非公故則托病亦復奈何世間萬事心肯令通自有其時瓜熟蒂落水到渠成時來風送滕王閣運去雷轟薦福碑亦復奈何奈何此亦無奈何彼亦無奈何無奈何三字之外更無一字可寄之語又復奈何又復奈何督事何間將過行耶一雙衣香有何所難而日復日長在洛上宗中萬事亦擔閣一邊第俟嘉禮後當圖得置付便覓去如何弟狀依昨京耗亦無可聞者耳燈下胡草都留不備十月初四謙弟拜
月圃回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