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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5년 김노겸 간찰(金魯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84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5년 김노겸 간찰 / 金魯謙 簡札
- ㆍ발급자
-
김노겸(金魯謙, 1781~1853,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5년 7월 3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巳七月晦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9.3 × 41.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을사년(1845) 7월 그믐날(30일)에 병제(病弟) 김노겸(金魯謙, 1781~1853)이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주요 내용은 김노겸이 심능규에게 자신이 강원감사와 평소 면식이 있다는 것과 찬집청(纂輯廳)에 대해 운운한 것 모두 상대방이 잘못 듣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발신자 김노겸의 자는 원익(元益)이고 호는 성암(性菴) 또는 길고자(吉皐子)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814년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홍산현감에 재임했으며 문집으로 『성암집(性菴集)』이 전한다. 수신자 심능규의 자는 사룡(士龍)이고 호는 월포(月圃)·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으로 강릉에 살면서 『인경부주(仁經附註)』를 편찬한 인물이다. 문집으로 『월포기(月圃記)』가 전한다. 편지에서 심능규가 상언(上言)과 관련해 김노겸에게 청탁한 건에 대해서 김노겸이 열심히 도모해 보겠지만, 만약 도승지와 면식이 없다면 애초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 내용이 확인되는데, 상언은 사인이 왕에게 억울한 사정이나 소원을 올리는 글로 심능규가 이 당시 상언을 승정원에 들이는 일과 관련해 김노겸에게 편지를 보내 부탁한 일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 편지에서 조선 후기 양반이 상언을 올리는 과정에서 지인을 통해 승정원 도승지와의 인맥을 활용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어지는 뒷면에서는 『인경서(仁經序)』를 돌려 보일 필요가 없어서 돌려보내는 사정을 전하고, 상대방의 복시(覆試), 천거(薦擧), 추천(追薦) 등 모두 도와주고 싶지만, 힘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전하고 있다. 발신자 김노겸의 자는 원익(元益)이고 호는 성암(性菴) 또는 길고자(吉皐子)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1814년에 진사시에 입격하고 홍산현감에 재임했으며 문집으로 『성암집(性菴集)』이 전한다. 수신자 심능규의 자는 사룡(士龍)이고 호는 월포(月圃)·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으로 강릉에 살면서 『인경부주(仁經附註)』를 편찬한 인물이다. 문집으로 『월포기(月圃記)』가 전한다. 심능규는 6번이나 초시에 합격하고도 1859년 70세의 나이가 되어서야 증광 진사시에 합격한다. 심능규는 연이은 낙방 속에서 인적 관계망을 통해서 과거 시험과 출세에 관하여 별지를 통해 요청하는데, 이 편지에서도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이 편지에서 심능규 자신이 지은 『인경부주(仁經附註)』와 그 서문을 지인에게 전달해 돌려 보게 하려고 했던 사실도 보인다.
원문
[앞면]
月圃淸拂謹封天高蟬淸懷往益切伏拜耑狀備審乍凉兄候增衛仰慰且賀第龍鐘匏落恒有鬱鬱不得志之意仰悶之外不勝奉慨鳧短鶴長莫非天蟲肝鼠臂何慊何擇附贅懸疣誰怨誰尤爐金躍躍人以爲不祥之金兄不讀南華經耶試於湮鬱慷慨之時展卷大讀則必有所得幸勿以我爲狂誕試讀之如何呵呵弟一痁數月乍却旋添眞元大下形殼徒存苦悶難狀而公擾又從以惱人莫非滄浪亦誰怨尤敎意多少一一備悉而病昏不得一一仰答可歎可歎上言事當十分另圖而萬或都令無聯臂之俗則初不呈之爲計惠物姑爲領置二葚亦仰感而傷哉云云兄亦不免俗奉呵奉呵朴上舍爲兄地方圖出力而不欲作書耳本伯及裨屬此則非所可論弟與東伯亦無半面之雅此則兄必誤聽也陟倅之無靈自來如此因已料之雖欲更得一書以道非但尹令今方入直在闕必無更書之理蓋娚妹間習洪纖巨細莫非造化之前定耳纂輯廳云云兄似誤認矣此不過漫成正宗以後公家文蹟與故憲而已私藏之書安得攙入耶此則必無之事耳餘萬紙盡姑不備謝式乙巳七月晦日病弟魯謙拜
[뒷면]
知其爲人與規模故耳襄倅許傳書亦安知不如陟倅耶世上事類如此奈何貞之無味亦勢所然矣今世豈有愛人下士薦寵汲引之風耶兄每以古道望今人宜其不合矣宜其良貝矣仁經序不必轉示故還爲仰呈非但文不合意貞之自來素執以不文自處不欲觀此等文字耳覆也擧也剡也皆爲留心陰欲仰助而每每力不贍奈何奈何至於先事宣洩萬無其慮諒之如何東伯巡路與科時若非童蒙先求切勿自我求之以觀其動靖如何弟亦行年七十矣閱歷不少勿論一飮一啄一資事級皆有前定萬般都道命半點不由人知之已熟輒爲仰誦亦勿以我爲泄泄畓畓須安心靜觀則可知此言不詐耳貴什朗誦再三不覺仙仙而亦爲耳送倘不俯嗔耶大有書當復傳之而每不裁答想非情不足也其從兄之病周月踰歲漸至難醫今也方在十分地頭實切矜惻復歎不覺涕簌簌下也都事初不欲出道伯考試第須善觀如何若其自下通路先容之術此無道理諒之如何每見兄書過情不似之老物老物答書每患孟浪言之無味事事無靈實所愧歎而兄若數通則無味之中或見味無靈之中或有靈不然則味甘如醴靈驗如鬼無可奈何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