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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미상인(연하산인) 시문(蓮下散人 詩文)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720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시문류-시(詩)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미상인(연하산인) 시문 / 蓮下散人 詩文
- ㆍ발급자
-
연하산인(蓮下散人,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9 × 27.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해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문 / 국역
和鏡浦主人遊石栧韻
鍊石漱瓊通磵茅
暇休餘餘驛諸郊
詩隨金鼓鳴空谷
酒瀉氷壺映露梢
遊洛衡豪學鵬擧
誇田穎老訪鶴巢
問君何似浮滄海
飌浪津頭易見嘲
蓮下散人稿
敬次石瓊樓韻
石樓宜瓦不宜茅
高出靑雲數里郊
書院淸槐垂作蔭
裴橋文杏自成梢
千年地僻落銀瀑
五月松寒警鶴巢
海客登□多慷慨
曳裾消受世人嘲
未枝時棋巵 別韻
경포주인1)이 석예2)를 유람하고 지은 작품의 운자에 화답하다
다듬은 돌 위 구슬 같은 물 산간 모옥에 통하여
틈날 때마다 유유자적 여러 교외로 인도하네
시는 금고3) 따라서 빈 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술은 빙호에서 쏟아져 이슬 젖은 가지 비추네
낙양에서 노닐던 형산 호걸처럼 붕새 기운 배웠으며4)
밭 자랑하던 영 땅 노인처럼 학 둥지를 찾았다네5)
그대에게 묻노라니 어찌 창해에 배를 띄우나
나루에도 풍랑 치니 쉬이 놀림 받을 텐데
연하산인6)이 짓다.
1) 경포주인(鏡浦主人) : 심능규(沈能圭 1790~1862)를 말하는 듯하다. 심능규의 자는 사룡(士龍)이고 호는 월포(月圃)·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을 사용하였으며 본관은 삼척(三陟)으로 강릉에 살면서 『인경(仁經)』를 편찬하였으며, 저서로는 『월포집(月圃集)』이 있다.
2) 석예(石栧) : 한국학자료포털(https://kostma.aks.ac.k) 고지명에서는 전라도 진안군 용담으로 확인되나 이 문서의 뒷면(A004_01_A00720_001_002)에 보이는 ‘석경루(石瓊樓)’와 함께 고려해 보아야 할 듯하다.
3) 금고(金鼓) : 보통 군중에서 사용하는 징과 북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악기 연주로 음악 소리를 말하는 듯하다.
4) 낙양에서 ~ 배웠으며 : 원문의 ‘형호(衡豪)’ 즉 형산의 호걸은 중국 당나라 문인 한유의 시문을 인용한 듯하다. 한유가 형산에 올라서 호방한 기운을 읊은 〈알형악묘수숙악사제문루(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라는 시가 있다. 원문의 ‘봉거(鳳擧)’는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대붕(大鵬)의 비상(飛翔)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한유처럼 호방한 기운과 대붕의 원대한 포부를 배운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5) 밭 자랑하던 ~ 찾았다네 : 원문의 ‘영로(穎老)’는 송나라 문인 구양수를 말한 듯하다. 구양수는 시 〈유증여이단계녹석침……봉정원보사인성유직강(有贈余以端谿綠石枕……奉呈原父舍人聖俞直講)〉(『문충집(文忠集)』 권54)에서 “마침내 의당 대자리 걷고 베개 들고 떠나서, 맑은 영수 가에 집 짓고 전답 사서 살리라.[終當卷簟携枕去 築室買田淸潁尾]”라고 하였으며, 〈우서(偶書)〉에 “계획 정하기 의당 아직 늦지 않았으니, 돌아가 영수 가의 밭을 갈리라[決計不宜晚 歸耕潁尾田]”라 한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은거할 땅을 자랑하며 구양수처럼 살 것임을 말한 것이다.
6) 연하산인(蓮下散人) : 누구의 호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석경루1) 운자에 공경히 차운하다
석경루는 띠풀 지붕 아닌 기와 어울리니
청운 위로 높이 솟아 너른 들판 밖에 보이네
서원의 맑은 회화나무 짙은 그늘 드리우고
배다리2)의 은행나무 저절로 교목 이루었지
오랫동안 궁벽한 땅에 은빛 폭포 떨어지고
오월이나 소나무 차서 학의 둥지 놀라게 하네
바다 손님 □…□ 오르니 강개한 마음 많아서
옷자락 끌며3) 세월 보내는 세상 사람 놀린다오
미(未)‧지(枝)‧시(時)‧기(棋)‧치(巵)를 별운으로 사용하였다.
1) 석경루(石瓊樓) : 18세기 말 19세기 초 문헌에 보이는 석경루는 창의문 밖 세검정 근처의 조지서(造紙署) 뒤쪽 즉 지금의 종로구 신영동 149번지에 있었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누정을 말하나 이 시에서 추사의 누정인지는 자세하지 않다.
2) 배다리 : 원문의 ‘배교(裴橋)’는 ‘배다리’의 한자 표기인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3) 옷자락 끌며 : 왕족이나 권세가의 집에 출입하며 빌붙어서 출세하는 것을 말한다. 원문의 ‘예거(曳裾)’는 한나라 추양(鄒陽)이 오왕(吳王)에게 보낸 글 가운데 “내가 고루한 나의 마음을 꾸미려고만 들었다면, 어떤 왕의 궁문인들 나의 긴 옷자락을 끌고 다닐 수가 없었겠습니까.[飾固陋之心, 則何王之門, 不可曳長裾乎?]”라는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한서(漢書)』(권51) 「추양전(鄒陽傳)」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