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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1886) 4월 15일에 감리인천항통상사무(監理仁川港通商事務) 엄세영(嚴世永, 1831~1900)이 관직에 있는 수신자에게 보낸 답장이다. 발신자는 간찰 내용 중 ‘민사(民事)’와 ‘항무(港務)’라는 단어에 따라 엄세영으로 추정하였다. 발신자 엄세영의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윤익(允翼), 호는 범재(凡齋), 시호는 숙민(肅敏)이다. 1864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1866년에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1881년에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경리통리기무아문사(經理統理機務衙門事) 율례사당상(律例司堂上)·한성부좌윤·성균관대사성·이조참판·정부당상(政府堂上)·사헌부대사헌·농상아문대신·판중추부사·경상북도관찰사·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하였다. 저작으로는 『일본문견록(日本聞見錄)』·『일본문견별단초(日本聞見別單草)』·『일본사법성시찰기(日本司法省視察記)』 등이 있다. 지난번 역편(驛便)을 통해 보낸 편지는 읽어보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흉년 든 춘궁기에 환곡을 나눠주고 받아낼 일로 모두 괴롭다고 하였다. 이어서, 한번 비오고 바람 부는 것도 농사의 실정이 되므로 신경이 쓰이는데, 수신자의 마음과 힘이 미쳐 보리농사가 풍년이 되어 공물(公物)이 기한을 맞출 수 있다면 수신자의 정사(政事)가 청명할 것이라고 칭송하였다. 민사(民事)에 항구 관련 업무까지 더해져 번잡스러운 자신의 근황과 함께, 수신자가 보낸 편지의 협지(夾紙) 내용은 자세히 잘 알았으며, 특별히 유념하여서 그 바람에 부응하겠다고 하였다. ‘감리인천항통상사무’는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부산·원산·인천이 개항(開港)된 뒤 개항 주변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무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사무와 통상 업무 등을 전담하기 위해 1883년(고종 20)에 제물포에 감리서(監理署)를 설치하고 감리인천항통상사무를 임명하여 인천 부사(府使)를 겸임하게 하면서 생긴 직책이다.
제목 없음
轉因順禠向伸函悃未知抵鑑否歉餘春窮振助刷納無非惱也一雨一風又爲農情而關念則倘以心力所到麥事得稔公物趁期政體淸明爲頌弟民事又添港務日以氄擾物隨以頻悶悚而已另夾收覽細悉特念另副爲希不備上 丙戌四月十五日 世永 生 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