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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조성교 간찰(趙性敎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559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2년 조성교 간찰 / 趙性敎 簡札
- ㆍ발급자
-
조성교(趙性敎, 1818~1876,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2년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1.3 × 11.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72년 조성교(趙性敎, 1818~1876)가 아무개에게 보낸 간찰이다. 조성교는 자는 성유(聖惟), 호는 소정(韶亭), 본관은 한양(漢陽)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예조판서와 홍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이 편지를 작성할 당시에는 우참찬으로서 대제학을 겸직하고 있었으며, 편지 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의 발문(跋文)을 작성하고 있었다. 이 발문은 규장각 소장본 선원계보기략(奎2306-v.1-16) 등에 실려 있다. 수신자는 태체(台體)라는 기체후 용어로 볼 때 역시 고관임을 알 수 있다. 이 간찰은 선원계보기략의 발문을 작성하는 것과 관련하여 자구의 첨입(添入)에 대한 의견을 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본 편지에 용건을 간단히 적고 나서 구체적 내용은 그에 딸린 협지(夾紙)에 기재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먼저 조성교는 자신의 차자(次子)가 질병으로 여러 날 위독했다가 지금은 비록 조금 좋아지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여증(餘症)이 있다고 하면서, 매우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차자는 예문관검열을 지낸 조종익(趙鍾翼)을 가리킨다. 이어 선원계보기략의 발문은 조만간 고종에게 올릴 예정인데 지금 또 구어(句語)를 첨입하라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지시가 있어 다시 증산(增刪)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협지에 본래의 초안을 써서 올린다고 하였다. 협지에서는 사공공(司空公) 이하 14대의 배위(配位)에 대해 기존에는 빠뜨리고 기재하지 않았으나 근년 이래로 문헌을 널리 상고하여 배위를 추록(追錄)하였다는 조목을 흥선대원군의 지시로 인해 첨입해야 한다고 하면서, “연칭대례(連稱大禮)” 아래에 자구를 산삭하여 첨입해도 되겠는지 문의하였다. 이는 실제로 조성교의 선원계보기략 발문에 “(전략)連稱大禮今又鉅典特舉輝映簡冊昭日月而軒天地遡而至司空公以下十四代配位之闕而不書者竝博攷文獻追載于譜”라고 반영되었다.
원문
1) 伏問比熱台體諸節萬安伏溸伏溸侍生間以次兒病狀多日苦劇今雖少减尙有餘祟焦悶不可狀璿譜跋文日間將入徹而今又有添入句語之敎不得不更加增刪玆夾上本草耳不備上
2) 璿譜最上司空公以下十四代配位其前則闕而不書近年以來博攷文獻追錄配位此亦鉅典盛禮也此條不得不添入今自雲宮有所敎矣連稱大禮之下可以裁刪添入耶下覽詳敎之伏望伏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