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1889년 정봉시 간찰(鄭鳳時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549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89년 정봉시 간찰 / 鄭鳳時 簡札
- ㆍ발급자
-
정봉시(鄭鳳時, 1855~193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3크기: 23 × 1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안부를 전하고 지난 가을부터 겨울까지 서울과 고향을 서너차례 오고 갔다는 내용의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89년 정봉시(鄭鳳時, 1855~1937)가 아무개에게 보낸 간찰이다. 정봉시는 자는 성소(聖韶), 호는 송리(松里),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강원도 출신이다. 1891년에 생원시에 입격하고, 이후 춘천ㆍ창녕ㆍ이천ㆍ의령군수 및 함경남도관찰사, 경학원대제학(經學院大提學) 등을 역임하였다. 이른바 일제 부역 유림 중 하나이다. 수신자는 자가 경언(景言)인데, 성명은 상고하지 못하였다. 편지의 내용으로 보건대, 정봉시보다 연소배인 것으로 보인다. 이 간찰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려 주고 상대를 권면하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먼저 정봉시는 상대의 공부 성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과연 무슨 책을 보고 있는지 물었다. 이어 자신은 서울과 고향을 이미 서너 번 왕복했다고 하였고, 해가 바뀌기 전에 또 고향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회시(會試)의 합격자 발표가 아직 나지 않아서 지루한 상태로 지낸다고 하였다. 정봉시가 이 편지를 과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작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근래 집에서 보낸 편지를 받아보니 중제(仲弟)가 이학(二瘧)으로 몇 달 동안 병치레를 한 데다 다른 병까지 더해져서 증상이 매우 위독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합격자 발표가 아직 나지 않아 돌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난감한 심정을 표하였다. 늘 세속을 초탈해 은거하려는 생각을 마음속에 두고 있는데 과거에 연연하고 있으니 자신의 입지(立志)가 견고하지 않다는 것을 더욱 자각하고 있다고도 하였다. 송현(松峴)은 모두 평안하게 지내고 있으나 강제(康齊)가 지방관 자리를 얻어 나가는 일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하였다. 끝으로 자신이 방종한 것은 가슴속에 온축된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상대는 자질이 뛰어나고 나이도 한창이므로 노력하여 성취할 것을 당부하였다.
원문
1) 景言我友重省幌
向承華翰失禠稽复迄自訟愆歲暮人遠實維重省餘文體衛旺三餘所得諒必不尠而果看何書能副遠望耶奉溯願聞弟自秋及冬旋京乍鄕已三四往返矣歲內又將賦歸而秪以杏榜之未出尙爾
2) 亦支離近見家書則仲弟以二瘧數朔沈痼之餘又添他症症甚危㞃云中心如焚無以定情而徒以杏榜之姑未出不得發還奈何高臥雲林睨視緇塵者弟之所眷眷于中者而今焉輸吾兄一籌益覺立志之不固也不審兄能副此望耶奉呵奉呵松峴節都安而康齊一麾尙無皁白經過之艱實日甚一日諺所謂丐憐傭憂者此也秋氏
3) 逡巡客枕寒夢到底苦惱滄浪也奈何如我之潦倒不過是胸無所蘊所致則以賢高明之姿又値富年政宜勉勵圖所以進取成立以爲如我輩者之戒而以副如我輩者之望如何如何萬忙姑不謹己丑臘念鳳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