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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조병은외 12명 상서(曺秉殷외 12명 上書)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52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상서(上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83년 조병은외 12명 상서 / 曺秉殷외 12명 上書
- ㆍ발급자
-
조병은외 12명(曺秉殷외 12명,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 기관/단체)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未九月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93.7 × 5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양호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83년 조병은 등이 집안의 분산에 가까운 곳에 묘를 쓴 정은이라는 이에 대해 산소의 이장을 강제하도록 청하는 상서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계미년 9월 정동면의 화민(化民) 조병은(曺秉殷) 등 13인이 강릉도호부사에게 올린 상서이다. 조병은은 자신의 8대 분산(墳山)이 북이리면(北二里面) 이라곡(伊羅谷) 축좌(丑坐)의 언덕에 있는데 이를 수호하고 계장(繼葬)해 오는 수백 년 동안 한 사람도 이 국내(局內)를 엿본 자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뜻밖에 작년 2월 남이리면(南二里面)에 사는 정은(鄭溵)이란 자가 버젓이 입장(入葬)을 하였고, 무덤을 쓴 곳은 자신들의 선산 단백호(單白虎)의 뇌두(腦頭)와 아주 가까운 요해처이고 앉아서나 서서 모두 보이는 곳이기 때문에 여러 차례 파내라고 독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은은 부유한 세력을 믿고 윤가(尹哥)에게 산 땅이라고 핑계를 대며 이장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전(前) 수령 때에 이 사안으로 관에 소송을 제기하여 ‘안타깝지만 정은이 값을 주고 산 땅이라는 것에 구애되므로 산소를 함께 쓰면서 수호하라.’는 처분을 받았지만, 자신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정은에게 엄한 제사를 내려서 즉각 무덤을 파 옮기도록 함으로써 자신들의 선산을 보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이에 대해 강릉부사는 ‘이미 전 수령 때에 판결이 났을 뿐 아니라 산이 윤가의 산이고 이미 산지를 팔았다는 사람이 있으니 산 사람과 함께 이야기해보라.’는 처분을 내려 개입하지 않았다. 조병은에게는 부정적인 판결이 나온 것이다.
원문
丁洞面化民曺秉殷等 謹再拜上書于城主閤下 伏以 民之八代墳山 在於府北二里面伊羅谷丑坐之原 守護繼葬者 數百餘年 無一人覬覦於局內矣 不意昨年二月分 南二里居鄭溵 肆然入葬於民之先山單白虎腦頭狎近要害 坐立俱見之地 故民等不勝憤迫 累次督掘 則鄭溵挾其富饒之勢 稱以買地於尹哥處 無意掘移 故前等城主時 卽爲籲寃 則前城主非不矜惻 民等之至寃 而但拘於鄭溵之贈價買地 以同山守護之意爲敎 則爲民之道 無地控訴 而爲人子孫之地 其在悶迫 卽當如何哉 當掘而不掘 當禁而不禁者 在法典無據 則其在爲子孫者 何以稱子孫乎 不勝憤迫 按住不得 玆敢齊籲于明決之下 伏願無私如天地嚴斷如雷霆俯燭 民等至寃 特下嚴題于鄭民 卽刻掘移 俾此貧寒之民 得保先壟 城主閤下處分
癸未九月日 曺錫三 曺錫臣 曺錫圭 曺錫夏 曺啓承 曺寬承 曺明春 曺緯承 曺秉斗 曺秉燦 曺秉爕 曺秉郁
〈題辭〉
事在前等已決除良 山是尹山 旣有賣主 可與買主 卞說向事 卄日 行使[着押] [官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