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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조석효 외 31명 상서(曺錫孝외 31명 上書)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518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소차계장류-상서(上書)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9년 조석효 외 31명 상서 / 曺錫孝외 31명 上書
- ㆍ발급자
-
조석효외 31명(曺錫孝외 31명,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9년 8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己亥八月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102.7 × 60.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 부분 얼룩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39년(헌종5) 8월에 강릉 유생(儒生) 조석효(曺錫孝) 등 32인이 연명으로 고(故) 권억영(權億榮)의 처 여흥민씨(驪興閔氏)의 효열(孝烈)의 자세한 내용을 서술하면서 조정에 보고하여 포장(褒獎)의 은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강원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39년(헌종5) 8월에 강릉 유생(儒生) 조석효(曺錫孝) 등 32인이 연명으로 강원도 관찰사에게 올린 상서로, 고(故) 권억영(權億榮)의 처 여흥민씨(驪興閔氏)의 효열(孝烈)의 자세한 내용을 서술하면서 조정에 보고하여 포장(褒獎)의 은전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지이다. 고 권억영은 평후공(平厚公) 권충(權衷 1349~1423)의 후손으로 절부(節婦) 강릉최씨의 8대손이며 효행(孝行)으로 알려진 감찰어사 권덕유(權德裕)의 7대손이고, 그의 처 여흥민씨는 묵헌(黙軒) 문인공(文仁公) 최지(崔漬)의 후예이고 효행으로 알려진 찰방 최사눌(崔思訥)의 7대 손녀임을 밝히고 여흥민씨의 효열에 대해 서술하였다.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흥민씨는 권억영과 혼인한 이후 가난한 살림 속에서도 손수 바느질을 하고 베를 짜서 그것을 팔아 음식과 의복 등을 장만하여 시부모를 편안하게 모셔 마을에서 효부라는 칭송을 들었다. 임진년(1832 순조32) 시환(時患 유행성전염병)에 시어머니의 병구완에 지극정성이었는데 시어머니가 기절하는 것을 보고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서 마시게 함으로써 잠시나마 소생할 수 있게 하였고, 시어머니의 장례 및 삭망 제전(祭奠), 조석으로 올리는 상식(上食)에 의복이나 장신구를 팔거나 이웃에 빌려서라도 정성을 다해 마련하였다. 을미년(1835 헌종1) 3월에 남편이 학질에 걸려 양양부(襄陽府)에서 사망하자 부음을 들은 날로부터 물도 넘기지 않았는데 열흘이 되도록 죽지 않았고, 이후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은 담사(禫祀)를 지내고 나서 목숨을 끊을 것이라 말하더니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을 정성을 다해 치르고 또 담사를 지내고 난 뒤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진하여 처음 초상 때에 정했던 마음을 그대로 지켰다는 요지이다. 시부모를 효성스레 봉양하였고 남편의 죽음에 따라 죽음으로써 정절을 지켰으니 효와 열을 겸비한 탁이한 행실임을 강조하였다. 전후로 받은 감영과 고을 수령의 제사(題辭)가 정중할 뿐만이 아니었는데도 아직 포장의 은전을 받지 못하였고, 조정에 상달(上達)할 방법도 없었는데 작년 사각(史閣)에서 포쇄할 때 예조당상 합하께 호소하여 ‘본도의 감영에 정소하고 식년(式年)에 조정에 보고하기를 기다린 뒤에 품처(稟處)하도록 하라.’는 제사를 받았다고 하면서 조정에 상달하여 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에 대해 강원도 관찰사는 ‘들으니 아주 가상하고 감탄스럽다. 공의(公議)가 오래될수록 더욱 좋으니 조만간 마땅하게 되기를 기다리도록 하라.’라는 다소 형식적인 제사를 써주었다.
원문
江陵儒生曺錫孝等 謹再拜上書于巡相閤下 伏以 旌孝旌烈 邦國之典也 獎善獎美 宰牧之政也 而猗哉朝家升聞之路 實由營邑報達之階也 近者本邑有嘉尙卓異之行 而不可泯滅 故玆敢齊籲伏願財察焉 故學生權億榮 卽臨津節死平厚公衷之後孫 節婦江陵崔氏之八代孫 孝行監察御史德裕之七代孫 其妻驪興閔氏 號黙軒文仁公漬之後裔 孝行察訪思訥之七代孫女 而自新婚之後 與其夫億榮 不顧身勞 以養其舅姑 而家雖甚貧 賣針傭織 飮食衣服寒暖 極力辦備 皆得其宜 以安其舅姑 閭里咸稱孝婦矣 當于壬辰時患 其舅栢與其子億榮 出避在外 與其柴叔 以救其姑之病 而所用之藥 非但湯劑 雖至汚之物 必先嘗而後進 暫不離側 以觀病勢 至于冬十一月十三日平明 見其氣絶 卽咬脂出血 以灌其口 又咬一脂連灌 俄而得甦 乃盡言子女間身後事 而其戌時奄忽 終不能救生 雖一日之甦 若非格天之誠 豈能若是乎 况値歉歲 殯葬祥事及朔望祭奠朝夕上食 或賣衣服首餙 或乞隣族 竭誠辦得 如禮終祥 至于乙未三月 其夫億榮 以虐癘 死於襄陽府 自聞訃日 水醬不入口 一旬未能滅性者 若非彌中之節行 豈能如是乎 但頭髮面墨毁身 晝哭於殯所 及其葬後 一向哭擗 或與隣里及大小家情意相通之人 接語必曰 我之命 將盡於禫祀之日矣 每言若是 寢處於靈筵之側 而廢却粒米 以至大小祥事 竭力盡誠 又於禫祀 依禮過行 而俟其昒昕 暗入夾室 自飮毒藥 出告于舅主前曰 三霜已畢 又經禫禮 則新婦三從之道盡矣 自言從夫於泉下云 而其舅則鱞居也 夏衣一襲豫備 跪進於言善之地 卽爲奄忽 而如此之計 中心已決於初喪之後 而誰能知如言決死於此日乎 當其歉〖斂〗襲之時 翻閱衣裳 則有何滿紙諺錄 披而覽之 乃亡人遺書也 書中所言 以鱞居其舅 不得終養之意 節節鳴寃 其他哀辭聞見者 莫不流涕也 致孝於舅姑 節死於夫 則孝而兼烈者 世所幾希也 婦人之旌烈者 間或有之 而未有盡善於此矣 生而極其孝於舅姑 盡其哀於奉几 死而得其禮於處身 歸而泄其寃於遺書 則此非稀世之卓行乎 自其閭里 至于擧鄕 無不稱美 而前後營邑之題 不啻鄭重 而實未有褒獎之典 亦未有上達之道者 昨年史閣曝曬時 禮堂閤下題音內 往呈本道監營 待式登聞後 稟處之意敎是 而適値其時 故玆敢齊籲伏願特加褒獎之典 以爲上達 無至泯滅 千萬無任祈懇之至 巡相閤下 己亥八月日 儒生曺錫孝 金學元 金達浩 鄭東基 朴志羽 許德老 金秉黙 曺桓振 崔衡魯 沈義祖 權大榮 辛{水+策} 金用槿 權豊榮 趙萬城 黃德升 李東和 崔弼容 柳秉洵 崔箕河 沈鶴書 金聲九 崔秉燁 朴曾若 曺英承 崔志益 李瑞秊 曺獜振 辛湜 李鍾燁 金東冕 辛洵 等
〈題辭〉
聞甚嘉歎 公議愈久愈好 且待早晩宜當向事 卄一日 使[着押] [官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