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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42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6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6년 12월 4일간지연도:왕력: 고종 13년추정시기:본문: 臘月四日
- ㆍ형태정보
-
점수: 3크기: 23 × 13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76년 12월 4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신좌모(申佐模, 1799~1877)에게 보낸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76년 12월 4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신좌모(申佐模, 1799~1877)에게 보낸 간찰이다. 모두 3장의 청나라 시전지(詩箋紙)에 작성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북경 정양문(正陽門) 밖 양매죽사가(楊梅竹斜街)에 있던 전문 상점인 금성(錦盛)에서 제작한 것이다.
신좌모는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진사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하응의 정치적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 간찰은 자신의 근황을 전하고 손자를 얻었음을 알려 주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본 편지는 각 장마다 훼손된 부분이 있어, 전체 내용을 완전하게 파악하기 어렵다. 먼저 이하응은 모든 사람이 이산(離散)하려는 생각을 가졌고 곳곳에 신음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시국을 근심하는 마음을 전하였다. 그러나 자신은 잠자코 있으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으며, 오직 손자들이 차례로 커 가는 것을 기뻐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7살 난 손자 아이가 동몽선습(童蒙先習)의 글을 읽을 줄 알고 날마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와 함께 자서(子書)를 읽는 것으로 일상을 삼고 있다고 하였다. 본문의 무구호(無口瓠)는 아가리가 없는 박이라는 뜻으로, 송나라의 어진 정승 이항(李沆)이 매우 과묵하여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다는 고사가 있다. 또 어제 오각(午刻)에 손자 하나를 얻었는데 용모가 비범하고 우는 소리가 우렁차다고 하였다. 이에 곧바로 조카인 경기감사의 후사로 정했다고 하면서, 이로써 예묘(禰廟)를 주관할 자손을 제대로 얻게 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경기감사는 이하응의 백형 흥녕군(興寧君) 이창응(李昌應)의 아들인 완림군(完林君) 이재원(李載元)을 가리킨다. 끝으로 마침 준팔(駿八)을 만나고 또 조만간 인편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이렇게 편지 한 통을 썼다고 하였다.
강릉 창녕조씨 소장 간찰 가운데 이하응의 간찰이 포함되어 있는데, 주로 이하응이 양주(楊州)의 직곡(直谷)에 은거하던 시기(1874년~1876년)에 신좌모에게 보낸 것들이다. 아울러 신좌모가 이하응에게 보낸 편지는 그 문집인 담인집 권14에 실려 있어, 상호 참조해 볼 수 있다.
- · 최호, 수집사료해제집7, 국사편찬위원회, 2013
참고자료
원문
(1)淡人文丌收啓 寒重雪積 伏惟道體淸鬯 目下生涯 可有執算耶 人人有仳離之思 處處有殿屎之患 日聞月見 何▣定情 其間▣…▣言天之告警 人莫▣矣 此將奈何 生一卽巖底簡無口瓠 消磨歲月 惟喜孫曺之頭角 次第崢嶸 七齒兒能讀先習之文 日日懃
(2)課 我▣▣堂 以勸以責 伴讀字書 日以爲常 昨昨午刻 又得一孫 容皃非凡 其泣喤喤 卽定舍姪畿伯之后 從此禰廟 有冢孫之歸正 大抵當爾者▣…▣前無碍 則豈敢望▣日之又▣孫也 此亦理也 許多情緖 不可以穎泓旣之也 適逢駿八之來下 又聞日間有褫 玆修一圅 付之此弁
(3)▣…▣知何日入抵也 此歲無餘 又未知更有書候 卽請道安 諸希珍攝 ▣▣不備 ▣…▣ 臘月四日 雲下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