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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년 이하응 간찰(李昰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422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5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5년 2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亥二月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5 × 3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을해년(1875) 2월 19일에 벼슬에서 물러나 양주 직곡에 은거하던 대원군 이하응이 담인澹人 신좌모申佐模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안부 간찰이다. 世子의 冊封禮가 거행된 것에 대해 억만년의 영원한 복이라고 하였다. 王世子(훗날 순종)의 冊禮는 1875년(고종 12) 2월 18일에 거행되었다.그러나 이런 성대한 예식을 맞아 위태로운 자신의 처지와 앞에 놓여있는 한계로 인하여 자신이 감히 直谷을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것에 대해 차마 말하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토로하였다. 申佐模의 건강이 늘 편치 못한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였다. 대원군 자신은 스스로 村學究가 되어 어린 손자를 가르치는 것으로 일상을 삼고 있으며, 때때로 허공에 咄咄怪事만 쓰면서 산중에서의 세월을 잘 보내고 있다고 하였다. 세밑에 지은 聯句의 “難知范老疽何發 可笑周郞氣不堪”이란 구절이 자신의 動靜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申佐模가 夾紙에서 언급한 내용에 대해서는 逐條 답변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대원군의 본 편지는 澹人集 卷14 書, 「上答大老書 乙亥元月」에 대한 답장으로 보인다. 다만 문집에는 別紙가 실려 있지는 않다. 이번에 국가적 경사가 있었으나 申佐模가 이미 낙향한 마당에 어찌 다시 도성에 들어올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上京을 통한 만남이 쉽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표하였다. 그러나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은 원래 이러한 법이니 아쉬워하는 자신의 마음은 摩竭宮에 들어 고초를 겪는 자신의 부질없는 생각이라고도 하였다. 용지는 황색지에 25행의 새로 줄이 있고 여백에는 다양한 구름무늬가 정교하게 찍힌 시전을 사용하였다. 특히 상단에는 ‘三樂齋詩箋樂天主人製’라고 새겨놓아 제작처와 제작자를 밝히고 있어 시전詩箋의 연구에 하나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 · (承政院日記 高宗 12年 2月 18日)
참고자료
원문
年後兩椷 幷承於仲春 山家遠慕之際 天佑東邦 日吉辰良 震宮冊封禮成 此爲萬億年無疆之休 如此盛禮 以其踪跡之臲卼 艮限之在前 未敢出山門一步之地 於情實難堪告 此際承審台候 恒諐欠和 遠伏只自憧憧 記下 拜日居鄕 隨分飮啄 情私戀悵 難以毛擧 惟喜穉孫 添齒能學 白首文方 冠褦襶日 以訓孫度日 自作邨學究 有時咄咄書空 而好送山中日月而已 顧此寢啖 何以有人人之言 我豈自損耶 歲前有聯句 難知范老疽何發 可笑周郞氣不堪 此一句 可以知此間動靜矣 夾示之多少說 不必逐條作復 言在不言中 今此慶會 跛躄設爲起之 惟台執一自作詩掛冠之後 豈可復入闤闠耶 從此奉話未易 臨池把筆 意想脉脉 淚在筆前 人事分合 元來如此 無非磨蝎宮閒商量 統希道安 不備 乙亥二月十九日直谷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