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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이하응 간찰(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406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하응 간찰 /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2크기: 22.5 × 19.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먼저 현재의 米價가 옥보다 비싸서 백성들이 장차 굶주려 죽은 귀신이 되게 생겼다고 하였다. 일전에 궐에 갔을 때 時事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대원군 자신은 마음으로 알고 눈으로 목격한 내용을 대략 말하기는 하였으나 雪泥鴻爪 즉 진흙에 남긴 기러기 발자국처럼 덧없고 隔靴爬癢처럼 효과가 없었다고 하였다. 더구나 말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을 거론하였으니 어쩔 수 없이 여러 사람의 비방이 반드시 많을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자신은 직설적으로 말을 하고 小節에 구애되지 않으니 大殿을 내려와서는 和氣를 잃지 않는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宋의 韓琦가 范仲淹, 富弼 등과 國事를 논할 때 곧장 서로 다투었다가도 각기 헤어져서 殿만 떠나면 마치 다투지 않았던 것처럼 서로 和氣를 잃지 않았다는 고사가 있다. 대원군은 혀 밑에 도끼가 있으니 과연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대저 500년 동안 길러온 백성들이 장차 모조리 죽고 말 것이라고 하였다. 국가를 패망에 이르게 하는 신하의 기세가 오늘날 같은 때가 없다고 하였다. 2000년 동안 禮義를 간직한 나라에서 어찌 한 명의 潁考叔이 없을 수가 있단 말이냐고 개탄하였다. 潁考叔은 春秋시대 鄭나라 사람인데, 임금이 음식을 하사하였을 때 고기를 한쪽에 놔두고 먹지 않고는 자기 어머니는 자기가 봉양한 음식만 먹어 보고 임금이 하사한 음식은 먹어 보지 못하였으므로 가져다 드리고자 한다고 하자, 임금이 그 효성에 감동하여 자신의 친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했다고 하였다. 즉 고종의 효심을 자극하여 자신과의 관계 회복을 유도하는 인물이 없음을 개탄한 것이다.
원문
(1)人事多難 舊雨未逢 寂寂閒牕 無聊獨坐 時聞布穀之啼 心神悲懷 有誰知我 目下米貴於玉 人將爲翳桑之鬼 我獨不飢 並於所謂安閒 其安能久否 日昨赴闕 語到時事 我以心知目經 略以言之 此無異雪泥鴻爪 又無異隔靴爬癢 且語次之間 或不無爲逼於人 勢有衆謗必多矣 我▣[則]有言必直 不拘小節 誰能悉下
(2)殿不失和氣之穩也 舌下有斧 果是不宜出行 大抵五百年培養之赤子 勢將盡劉乃已 嗚呼 羣凶在之 君子自歸 置吾君於不仁不善之中 終古敗國之臣何患 而無如今日之事矣 二千年禮義之邦 豈可無一個潁考叔耶 言之於此 無奈 擲筆吁噓 咄咄書空 萬望順時自愛 必與我同歸泉壤 如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