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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이하응 간찰(李昰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399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 × 23.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74~1876]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신좌모(申佐模, 1799~1877)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주요 내용은 자신이 나라를 그르쳤다는 조정의 의론에 대해 거리를 두고 그저 마음을 편히 가질 뿐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내용이다. 1872년에 참판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로 인해서 대원군은 이 당시 경기도 양주(楊州) 직곡(直谷)에 은거하고 있던 시기이다. 신좌모의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고,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원릉별검(元陵別檢)·성균관전적·병조정랑·종부시정 등을 역임하였고,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849년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사간원사간 등을 지내고, 1855년(철종 6) 진위진향사(進慰進香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담인집(澹人集)』이 있으며, 이 문집에 이하응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신좌모는 대원군 집권기에 이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할 정도로 대원군에게 신임을 받았던 친대원군계 근기남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원문 / 국역
柒齒已入京城 如行無人之境 一世之心 如當蛇虺 滿朝之論 如逢虎狼 其間誤國之罪 歸之於記下與雨田 此將奈何 今不必呶呶爲辨 自有後日之譏也 事至此境 興亡安危 付之於天 吾輩則只以黙黙垂袖而已也 十分安心自靖 悠悠我懷 書豈盡言 惟在不言中耳 此書初奉黃蔚珍之袖 無便稽謝 俄逢五衛 玆付之耳
일본인이 이미 京城에 들어와 無人之境을 활보하듯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간 誤國의 죄를 자신과 雨田(鄭顯德)에게 돌리고 있다고 하였다. 지금 이에 대해 辨釋할 것은 없고 자연 뒷날의 비판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사태가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흥망과 안위는 하늘에 맡겨 둔 채 우리들은 다만 정국을 관망하는 태도를 가질 따름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