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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이하응 간찰(李昰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398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6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子)六月卄三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 × 23.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병자년(1876) 6월 23일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신좌모(申佐模, 1799~1877)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1872년에 참판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로 인해서 대원군이 경기도 양주(楊州) 직곡(直谷)에 은거하고 있던 시기에 작성된 편지이다. 신좌모의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고,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원릉별검(元陵別檢)·성균관전적·병조정랑·종부시정 등을 역임하였고,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849년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사간원사간 등을 지내고, 1855년(철종 6) 진위진향사(進慰進香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담인집(澹人集)』이 있으며, 이 문집에 이하응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신좌모는 대원군 집권기에 이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할 정도로 대원군에게 신임을 받았던 친대원군계 근기남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본 편지에도 대원군과 신좌모와의 친밀한 우호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신좌모의 아들 신승구(申昇求)가 동년 2월 10일에 치러진 생원시에서 2등 7위로 입격했다. 서두에서 申佐模 아들 申昇求의 사마시 입격 소식을 언급하였다. 또 이때에 申佐模가 영남을 유람하려는 계획을 세운 것에 대해 申佐模가 詩作을 풍부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금년의 가뭄은 백년 이래 초유의 재난인데 바로 이어서 18일부터 많은 비가 내리고 있으니 염려된다고 하면서, 금년에 흉작을 맞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였다. 피서하기 위해 德里에 머물기도 하였으나 어린 손자가 설사증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집에 돌아왔다고 하였다. 지금은 손자의 병이 나았으나 여식이 痢疾로 고생하고 있다고 하면서, 괴로운 마음을 표현하였다.
원문
(1)淡人先生文座 久旱山樓 靜誦正深 忽於便至 拜讀先椷 備承情注 藉悉其間 令抱小成 晩年福分 萬萬健羨 此時遊覽嶠南之計 淸趣自足 必富奚囊矣 拜審近旱近雨 台候無損 區區遠溯 第今年之旱 百年以來初有之灾 又自十八始雨 似爲成霖樣 此亦可關慮 卽統以論之 今年無秋 已無可言
(2)人病又多 尤相可怕怕 記下 其間意欲避暑賞蓮 間駐德里 卽聞穉孫泄病之祟 忙忙歸家 一孫之病 其翌瘥瘥 女息又以痢証爲苦 遍身之苦 卽是汗癍滿之憂 無非暑毒 日夜薰心 隨處惱勞 不可以穎泓道之 卽請道安 諸希珍攝 不備 照亮 六月卄三日雲下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