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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이하응 간찰(李昰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39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6년 이하응 간찰 / 李昰應 簡札
- ㆍ발급자
-
이하응(李昰應, 1820~189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신좌모(申佐模, 1799~187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6년 8월 1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八月十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2 × 32.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76년 8월 16일에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이 신좌모(申佐模, 1799~1877)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대원군의 1876년(고종 13) 8월 10일자 편지에 대한 申佐模의 답장인 「上答大老書 丙子八月」에 바로 이어진 대원군의 답장이다. 이른 서리로 인한 흉년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자신은 긴 여름을 잘 보냈으나 서리 내리는 시기에 감기에 걸려 밥맛을 잃는 등 고생하고 있다고 하였다. 고종이 병은 나았으나 기력 소진으로 운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스러운 마음을 드러냈다. 창녕조씨 명숙공종가(命肅公宗家) 소장 간 찰 중 흥선대원군이 신좌모에게 보낸 간찰은 총 30점인데, 1872년에 참판 최익현(崔益鉉)의 상소로 인해서 대원군이 경기도 양주(楊州) 직곡(直谷)에 은거하고 있던 시기인 1874~1876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좌모의 자는 좌인(左人), 호는 담인(澹人),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1827년(순조 27) 사마시에 합격하고, 1835년(헌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원릉별검(元陵別檢)·성균관전적·병조정랑·종부시정 등을 역임하였고, 춘추관편수관이 되어 실록편찬에도 참여하였다. 1849년에는 사헌부집의를 거쳐 사간원사간 등을 지내고, 1855년(철종 6) 진위진향사(進慰進香使)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담인집(澹人集)』이 있으며, 이 문집에 이하응에게 보낸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신좌모는 대원군 집권기에 이조참판,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할 정도로 대원군에게 신임을 받았던 친대원군계 근기남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본 편지에도 대원군과 신좌모와의 친밀한 우호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대원군이 신좌모에게 보낸 여러 편지에 화려한 시전지를 사용했는데, 본 편지도 붉은색 시전지가 매우 인상적이다.
원문
早霜殺靑 餘草無矣 勢將盡劉 深冬明春 將何以了生 悠悠蒼天 何以酷罰 只自罔極 卽惟此時 文體淸鬯萬旺 柴米油鹽 亦何準備 區區遠溯 適逢駿八 云有晦褫 預修一函 藉探諸節之安 記下長夏好過 新霜嬰感 數日呻囈 口味全却 此爲衰胃 實難醒之 惟家內勻吉 而其間上候 雖已平復 終是虛憊 尙未巾櫛 切悶切悶 此書卽是報平安之相傳者也 多少都擱 卽請道安 諸希珍攝 不備 郞照 八月十六日 雲下生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