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미상년 아무개 간찰 별지(簡札 別紙)
기본정보
해제
미상년(1827년 추정) 발급자 미상의 간찰 별지이다. 어제 서울 소식을 듣기에 이존수(李存秀, 1772~1829) 대감은 우상(右相, 右議政)에 제수되었고, 박종훈(朴宗薰, 1773~1841) 대감은 호판(戶判, 戶曹判書)에 임명되었으며, 조보(朝報, 朝紙)를 빌려다 옥가(玉街)에 두었으니 아마도 필시 대창(大滄)에 전달되어 이르렀을 것이라고 하였다. 서울 인편은 우선 올라가는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이존수는 자는 성로(性老), 호는 금석(金石)‧연유(蓮游), 본관은 연안(延安), 부는 이문원(李文源),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후손이다. 1794년(정조 18)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삼사의 청요직을 두루 거쳐 경상감사‧한성부판윤‧대사헌·6조의 판서 등을 고루 역임하고, 1827년에 우의정, 1829년에 좌의정에 제수된 이력이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박종훈은 자는 순가(舜可), 호는 두계(荳溪), 본관은 반남(潘南), 부는 박참원(朴參源)이다. 1802년(순조 2)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삼사의 청요직 및 6조의 판서 등을 고루 역임하였고, 특히 1827년에 호조판서에 제수된 이력도 있다. 1834년에 우의정, 1837년에 좌의정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이들의 관직 임명 정보를 통해 이 별지가 발급된 해를 1837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된 ‘朝紙’는 조보(朝報)의 이칭이다. 여기에는 국왕이 내린 비답‧판부‧전교‧초기‧비망기, 경‧외(京外) 관원이 올린 소장‧장계‧서계, 임명관원 및 하직‧사은 인원 명단, 거행조건, 과거 시행 사항 등이 기록되었고, 중앙 각 아문 및 시‧원임 관원, 지방 관아 등에 배포되었다. 특히 지방 관아에 배포되는 경우 주로 경저리들이 등사하여 기별군사(奇別軍士)를 통해 전달했는데, 이렇게 전달된 조보가 다시 해당 지역의 인맥 등을 통해 일반 사인에게도 전달되어 중앙의 소식을 확인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조보는 『승정원일기』‧『일성록』 및 현재 남아있는 전교축(傳敎軸)과 같은 자료와 연계하여 살펴볼 가치가 있다.
- · 金孝京, 「朝鮮時代 簡札 書式 硏究」,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5 朴大鉉, 「漢文書札의 格式과 用語 硏究」, 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하영휘 외, 『옛 편지 낱말사전』, 돌베게, 2011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참고자료
원문
京耗昨果聞之李台存秀拜右相朴台宗薰爲戶判朝紙借在玉街想必轉到大滄耳京便姑無上去者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