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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신태희 간찰(申泰熙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382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3년 신태희 간찰 / 申泰熙 簡札
- ㆍ발급자
-
신태희(申泰熙,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903년 8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卯八月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 × 26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계묘년(1903) 8월 19일에 척제(戚弟) 신태희(申泰熙)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戚弟’라고 표현하여 인척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수신자는 미상이다. 『고문서집성』 97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종가편」에 실린 <1903년 신태희(申泰熙) 서간(書簡)> 등을 참조하여 이 간찰의 발급연도를 1903년으로 추정하였다. 갈대에 맺힌 이슬[葭露]이 쓸쓸하여 상대가 그립던 가운데 편지를 받아 객지에 있는 상대의 안부를 알았지만, 어떤 와전된 소문으로 일어난 소동[騷訛]을 언급하며 향곡이 서울의 여론보다 심한 점이 있다고 하였다. 자신은 예전 그대로 지내고 아이들도 무탈하다는 근황을 알렸다. 상대가 부탁한 일은 잘 알았다고 하면서, 마땅히 아우에게 전달해야 하는데 더구나 이때에 필요치 않은 원행을 떠나려 하므로 그 뜻을 멈추라고 할 계획이라 했다. 자신의 시산(柴山)은 배천(白川)의 발산(鉢山)에 있는데 독촉하여 운반하고자 해도 운발 할 방편이 없고, 김천은 멀지 않으므로 신태원(申泰元)에게 보내는 편지를 잘 전달 해 주기를 부탁하였다. 추록에는 누원댁(樓院宅) 안부를 전했다. 본문에서 언급한 가로는 『시경』 「겸가(蒹葭)」의 “갈대는 푸릇푸릇한데 흰 이슬은 서리가 되었구나. 이른바 저 사람께서는 물 저편에 있네.[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로 그리운 벗을 형용한 말이다. 또한 소와는 수신자에게 생긴 일로 추정된다. 상대에게 모종의 부탁을 한 것이나 자신이 소유한 ‘시산’의 소재처가 황해도 배천에 있어서 운반하기 멀어 김천에서 운반 해 오기를 도모하는 등 당시 발급자 및 수신자 주변에서 왕래하던 물자와 이동경로, 방식 및 생활 모습 등의 단편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신태희는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다. 다만 『고종실록(高宗實錄)』‧『순종실록(純宗實錄)』‧『승정원일기』 등에 실린 동일 인명의 인물 이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종 15년(1878)에 춘당대에서 열린 입직 무사(武士)의 시사(試射)에서 무용위(武勇衛) 남행 선전관(南行宣傳官) 신태희 등이 사제(賜第)되었고, 고종 23년(1878) 전라우도수군절도사에 제수, 고종 39년(1902) 종2품 신태희를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에 제수, 고종 42년(1905) 7월에 육군참령(陸軍參領) 신태희를 평안남도관찰사에 제수, 같은 해 8월에 충청북도관찰사에 제수, 고종 43년(1906)에 시종원부경(侍從院副卿)에 임명하고 칙임관 3등에 서임되었다가, 순종 1년(1907) 7월 26일에 ‘무관 가운데 현 보직이 없는 인원의 장령(將領)‧위관(尉官) 직명을 해면하라’는 칙명이 내려져 참령 신태희, 일등군사(一等軍司) 정봉림(鄭鳳林) 등이 해면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봉림은 신태희와 함께 이 문중에 발급한 간찰이 있으므로 위 인물을 발급자로 유추하였지만 확실하지 않다.
- · 『高宗實錄』 『純宗實錄』 『承政院日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율곡연구원,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3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서도기획, 2020.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집성』 97 「동래정씨 동래부원군 정난종종가편」(한국학중앙연구원, 2010)
참고자료
원문
葭露蒼凉懷仰尤深卽伏拜惠復敬審比辰旅體節萬旺仰慰愜祝離闈之情私秋來倍切矣爲之憧憧而騷訛近頗有之鄕谷必甚於京洛物情果何如耶此時郵便書信不必張皇書煩故姑略之也戚從弟姑依病劣而兒曹無恙是幸示意謹悉而此意當傳及于舍弟矣況此時不必作遠行使之罷意計耳鄙之柴山在於白川鉢山擬欲督運而無路得便矣自金川不遠故玆仰煩申泰元許所去書得信便轉付仰企仰企餘姑不備上癸卯八月十九日戚弟申泰熙拜手樓院宅諸節安康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