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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이복영 간찰(李復永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341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76년 이복영 간찰 / 李復永 簡札
- ㆍ발급자
-
이복영(李復永, 1846~?,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76년 5월 12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丙子閏月十二日
- ㆍ형태정보
-
점수: 3크기: 19 × 2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병자년(1876) 윤5월에 12일에 내종(內從) 이복영(李復永, 1846~미상)이 만오(晩悟)에게 보내는 간찰이다. 따로 별지가 있다. 주요 내용은 정혼(定婚)한 여식의 죽음에 대한 심정을 전하고, 출산에 쓸 미역 1속(束)을 보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다. 이복영의 자는 승여(昇汝)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861년 진사시에 입격(入格)하고, 1872년 문과 급제했으며 주서(注書), 정언(正言)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이복영은 갑술년(1874)에 후실을 얻어 재취했고, 최근 홍천(洪川)으로 옮긴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딸아이의 죽음으로 심신이 아직 안정되지 않는다며 비통한 심정을 전하면서, 후실이 나이가 20이 안되었는데, 산달을 앞두고 미역과 쌀이 없어서 걱정이라며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한 여름에 베옷이 없다며 염치불구하고 1필을 보내 주길 부탁했다. 조선시대 양반이 딸을 잃어 비통한 와중에도 부인의 출산을 앞두고 미역을 준비하기 모습 등 일상 그대로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원문
晩悟省案下
地隔半千積年阻信悵懷曷勝言謹問旱炎侍餘棣事淸瑟堂節別無大損而近年則生得幾箇男妹耶遠外所慮不任願聞內從甲戌始爲續絃近居於洪川矣其人心也山川也還不如故書故昨冬不得已還故鄕里則生涯之窘艱去來都無益將何以生活乎只自吁歎而已又重之卽今春又見定婚女息之慘此何身數耶 悲神尙未定頓而已所謂妻也不滿二十又有孕胎産月當朔尙無藿米之備是亦關心處也産藿一束或可隨便付上耶千萬切仰千萬切仰當此盛炎布衣都無故玆冒廉專煩常布一疋付送切仰又企又企餘心亂不備丙子閏月十二日內從復永拜
(別紙)此去人卽洞中漢而隨場興利之人若不爲往則此書答卽書付於此漢之主人如何布疋藿束專恃專恃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