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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박세균 간찰(朴世均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332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909년 박세균 간찰 / 朴世均 簡札
- ㆍ발급자
-
박세균(朴世均,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발급 연대로 봐서 창녕 조씨 명숙공 문중의 조헌승(曺憲承)의 아들 조병정(曺秉正) 또는 손자 조인환(曺仁煥) 정도로 보인다.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4.7 × 4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잠업에 관한 내용의 간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기유년(1909) 6월 12일에 제(弟) 박세균(朴世均)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라고 표현하여 평교간 정도로 추정된다. 수신자의 경우 피봉 등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없어 미상이나 발급 연대로 봐서 창녕 조씨 명숙공 문중의 조헌승(曺憲承)의 아들 조병정(曺秉正) 또는 손자 조인환(曺仁煥) 정도로 보인다. 처음 조부모를 모시는 상대 및 가문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객지에서 그럭저럭 지내는 근황을 알렸다. 양잠(養蠶)과 직조(織造)에 관한 일은 모두 겸하며 지내고 있지만 게으른 습성에 재주가 없어 실효를 보지 못하니 이는 ‘제나라를 치려는 명분(겉으로 일하고 뒤로는 딴 짓 하는 모습)’이라 할 만 하다고 하며 매우 부끄럽다고 했다. 전날 소지해 온 안경의 값은 내려 보낸 뒤 그 액수를 계산할 계획이라고 하며 헤아려 달라고 했다. 이번 잠업소(蠶業所)에서 공동의 식목계(植木契)를 설립할 법을 만들어 날마다 개척하고 있으니 이는 세계적인 실업을 행하려는 목적이라고 하였다. 서울 소식을 얼핏 듣기에 황제가 친히 한양에서 쟁기를 잡았고, 황후도 친히 양장하는데 임했다고 하니 국민의 도리로서 어찌 실업이 없을 수 있겠냐고 했다. 상대의 고명한 자격으로 조금도 신식에 두루 통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본문에서 언급된 황제와 황후에 관한 일은 이 간찰이 발급된 해에 있었던 순종황제와 황후의 동적전(東耤田) 친림 및 잠실 수견식(收繭式) 등의 일을 두고 하는 말로 보인다. 『순종실록』을 참조하면, 순종 2년(1909) 7월 3일(음 5월 16일) 황제의 ‘동적전에 행행하여 친예(親刈)하겠다’는 조령(詔令)이 있고 이틀 뒤 5일에 친히 보리를 베는 의식을 행한 일이 있었다. 또한 같은 해 5월 22일에 황후가 수원의 권업모범장(勸業模範場)에 행행 할 것을 명한 뒤 6월 1일에 친림하여 양잠을 장려하는 휘지(徽旨)를 내리고, 이후 6월 21일에는 명부(命婦)들을 직접 거느리고 궁중 잠실에서 수견식을 행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서울에서는 이동휘(李東輝)‧안창호(安昌浩) 등 서북‧관서‧해서지방 출신자들이 주도하여 1908년 애국계몽단체 서북학회(西北學會)가 조직되었는데, 이 단체는 농림(農林) 진흥을 추진하면서 농림강습소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박세균의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나 1919년 8월 30일 서울 3.1운동 만세 참가자 <신문조서(訊問調書)> 및 같은 해 11월 8일자 <매일신보>에 본적지가 ‘함흥군(咸興郡, 咸州郡) 상조양면(上朝陽面)’이고 당시 ‘경성전수학교(京城專修學校) 3학년 생’으로 나오며, 이후 조선총독부 『직원록』에 1934~1939년까지 ‘상조양면 면장’을 지낸 이력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면 이 간찰이 발급된 당시 그는 서북학회와 연관이 유추되므로, 본문에서 양잠업이나 식목계(植木契) 등을 언급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을 통해 한말 대한제국 시기에 발생한 사건 및 분위기의 실제 사례를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 · 『純宗實錄』 卷3 <純宗 2年(1909) 5月 22日, 6月 1日‧21日, 7月 3日‧5日 등> 율곡연구원,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3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서도기획, 2020.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每日申報> 1919년 8월 30일, 11월 6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조선총독부 『직원록』)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한민족독립운동사』2 국권수호운동Ⅱ/ Ⅳ. 국권수호를 위한 사회·문화운동/ 5. 학회운동/ 3) 후기 학회의 사상과 활동)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14 「三一獨立示威關聯者訊問調書」 <朴世均 訊問調書>)
참고자료
원문
初春逢別殆若夢境悵仰曷已謹詢此時肇夏重侍餘體候連棣萬旺諸榭均禧否仰溸區區且祝弟客狀觕安是幸而且蚕織事兩兼度了然懶性困得未踏實效此可謂伐齊之名也甚爲愧赧耳前日所持來眼鏡價下去後當計數爲計矣則以此下諒如何又今蚕業所生法共植木契設施逐日開拓此可爲世界上實業之目的也側聞京毛則皇帝親臨執耒于漢陽皇后亦親臨養蚕云其國民之道理豈可無實業耶感歎感歎惟冀君之高明資格少不無新式之薄達矣餘旅擾不備書禮己酉六月十二日弟朴世均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