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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5년 원세준 간찰(元世準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331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5년 원세준 간찰 / 元世準 簡札
- ㆍ발급자
-
원세준(元世準, 1824~,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원탁(沈遠鐸, 1826~1868,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5년 8월 30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乙丑八月晦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8.5 × 39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을축년(1865) 8월 30일에 제(弟) 원세준(元世準, 1824~?)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라고 표현하여 평교간 정도로 추정된다. 수신자는 미상이나 배면의 자봉으로 된 피봉의 내용에 ‘月浦 楣廬(여막)’라고 되어 있고, 내용상 친상을 당한 뒤 탈상 할 시기인 것으로 보면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의 아들 심원탁(沈遠鐸, 1826~1868)으로 추정된다. 처음, 상주로 있는 상대의 안부를 물은 뒤 자신은 몸소 상대가 있는 여막으로 찾아가지 못하고 다만 위문의 편지로 대신한다고 하면서 지난 해 앞뒤로 부친 편지는 모두 잘 받았으리라 여긴다고 했다. 세월은 멈추지 않아 상제의 끝에 이르러 복장도 점차 상복에서 평상복으로 바뀔 것이니 미체(未逮)한 슬픔은 처음 돌아가셨을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는 등 위로하였다. 자신은 어버이의 연세가 점차 높아지고 매양 손절(損節)이 많은데도 집을 떠나있는 마음을 무어라 형용할 길이 없고, 올해 들어 학업도 퇴색되었다는 등 근황을 알렸다. 상대의 부친이 편찬한 『인경(仁經)』 한 부는 명산(名山)에 소장하여 후대에 자자손손 물려줄 만하니 남은 것이 있다면 한 건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운정(雲亭)의 종씨(從氏), 반감(半鑑)과 죽양(竹陽) 측 등의 안부를 묻고, 학산(鶴山)에서 보낸 부고는 인편을 따라 잘 부쳐주기를 바랐다. 추록에는 지산(砥山) 인편을 따라 별도로 보낸 안부 편지도 회체(回遞)되었을 것이니 다시 알려 주신다면 직접 보는 것처럼 반가울 것이니 도모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인경』은 심능규가 편찬한 저서로 유가 경전 및 성리학 전적에서 인설(仁說)을 뽑아 수록한 필사본 저서로 20권 7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1846, 1849년에 쓴 자서(自序) 3편이 있고, 박처인(朴處仁)이 필사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간행연도는 헌종 15년(1849)년이다. 심능규의 저서 『월포기(月圃記)』 「근대책문(謹對策文)」 말미에 “신은 일찍이 경전 가운데 ‘인(仁)’자 구두(句讀)만을 유집(類集)한 것을 7책으로 나누어 ‘인경’이라고 제목을 지었으니 대개 『심경(心經)』과 『충경(忠經)』의 의리를 취한 것입니다.”라고 하여 간행 사실을 자술한 내용이 있다. 또한 본문에서 언급된 여타 지명[택호] 가운데 ‘반감(半鑑)’의 경우 『월포기』의 <경신년 제문>에 따르면, 반감 이온여(李溫汝)는 인아(姻婭)간이면서 벗이었고, 그가 사는 사촌(沙村, 沙火로 추정)과 자신이 거주한 정동(亭洞, 雲亭洞)은 10여리 정도여서 백일장에서 서로 만나 놀던 사이었음을 회고하고 있는 내용을 통해 자가 ‘온여’인 이 모(李某)의 가족들로 추정된다. 발급자 원세준은 자는 유평(幼平), 본관은 원주(原州), 부는 원석귀(元錫龜), 생부는 원석형(元錫亨)이다. 철종 6년(1855) 식년시 생원 2등으로 입격하였다. 『승정원일기』를 참조하면 철종 9년(1858) 관학유생의 신분으로서, 추탈관직 된 조석우(曺錫雨)의 조부 조하망(曺夏望)의 복관을 물리기를 요청하는 연명 상소(上疏)에 이름이 있고, 고종 24년(1887)에 북부도사(北部都事)에 임명된 이력이 확인된다. 피봉에 기록된 소산(蘇山)은 현 여주시 북내면 장암리 소재의 원주 원씨 세거지 일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며 현재도 이곳에 소산사(蘇山祠)가 남아 있다.
- · 『承政院日記』 <哲宗 9年(1858) 11月 18日, 高宗 24年(1887) 6月 12日, 15日 등> 『乙卯式司馬榜目』 (국립중앙도서관[일산古6024-51] p.11) 沈能圭, 『月圃記』 「謹對策文」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수집사료해제집 1편:강릉 창녕조씨 소장자료 목록) 사이트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문검색서비스 “仁經附註” 서지 및 해제 참조. 합
참고자료
원문
省禮伏問霜令哀體萬支伏念不任居在絶遠之地不得躬進堊室祗修替慰之幅先後付上于年前轉便矣想得次第入覽而阻閡之久勢所然者有時溯仰寧有其極居諸不留禮制有限冠裳次第隨變霜露旣降靡逮之慟伏想如新矣人或有於孩蒙時俱失怙恃者有之而豈有與哀兄千萬人所不當情地之類也禍不單行之說乃在於長悳之門理實難諶幾年讀禮之暇講究經傳俾作溫新之工區區悲溯不任弟親齡漸邵恒多損節離闈情私無以形喩渠亦年來所得祗是星星學業從以漫漶恐犯陳人之戒歲又大侵百口接濟亦無涯畔實非薄細也仁經一部欽仰先尊丈平日精力所在惟宜藏之名山以俟後日之子雲而不佞年前進候時草草覽過未記萬一之要尙用恨歎如有餘草一件早晏間下示申望申望所欲言者山積而不能盡煩又涉草率尤用主臣雲亭令從氏諸節一安否所懷一般而不得探候何等流悵半鑑與竹陽諸節亦一樣否面面馳神寉山所去唁狀隨便信付如何餘萬不備疏禮別從砥山便探候而想有回禠矣若賜回敎可敵一晤圖之是望 乙丑八月晦日弟元世準拜疏
月浦楣廬下入納蘇山謹拜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