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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집 간찰(弟 崔景集 簡札)
기본정보
해제
임○년 1월 29일에 제(弟) 최경집(崔景集)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면서 협지 내용을 전달하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弟’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간찰과 동봉하여 발급된 것으로 추정되는 별지의 내용을 통해 수신자를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로 추정할 수 있다. 소식이 막힌 지 몇 년이 흘러 모습을 잊어버리겠다고 하면서, 봄날에 어른 모시며 지내는 형제분들의 안부가 좋은지 물었다. 자신의 경우 지난겨울 서울에서 지금 사는 곳으로 돌아온 근황을 알렸다. 서울 소식을 들으니 어명에 귀인(貴人)으로 삼으라는 교지가 특별히 내려졌다고 하니 신년의 좋은 일이라고 하였다. 상대와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언급하며 노년에 편지를 쓰면서 서글프다고 했다. 나머지 사연은 협지에 있으니 잘 살펴달라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서울에서 돌아왔다’는 말을 통해 발급자는 서울에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이때 낙향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귀인’은 종1품에 해당하는 내명부(內命婦) 위호(位號)이다. 창녕조씨 명숙공 문중의 최씨 관련 전적을 살펴보면, 조석삼(曺錫三)의 현달에 의해 증조비(曾祖妣) 유인 최씨(孺人崔氏)가 숙인(淑人)에, 비(妣)가 유인 최씨(孺人崔氏)가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된 사례가 소장 고문서를 통해 확인된다. 하지만 숙인이나 정부인은 외명부 위호로 내명부 위호인 귀인과는 맞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귀인의 위호가 정확히 누구에게 내려졌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정황상 발급자 본인의 딸이나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발급자는 이 문중과 큰 혼반이 없는 왕실과도 어느 정도 연계된 이른바 경화사족이었을 수 있다. 이를 통해 경향간을 왕래했던 일이나 나라의 특명이 내려졌던 일에서부터 서신을 왕래하고 협지를 통해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리던 당시의 사람들의 실제 모습을 단편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율곡연구원,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3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서도기획, 2020.
원문
阻凡幾年殆若忘形謹詢此春侍餘棣候玉護錦毖仰溯且祝弟昨冬自洛返棲一無可意者而今坐前得聞京國消息成命特下於所敎貴人以是爲新年之怳矣何以則更當握手穩討耶餘年無幾不覺臨楮沖悵耳餘在夾錄惟冀亮照賜答焉不備上壬正少晦弟崔景集拜拜
謹候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