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1862년 황덕승 만사(黃德升 輓詞)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94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시문류-만사·만시(輓詞·輓詩)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 황덕승 만사 / 黃德升 輓詞
- ㆍ발급자
-
황덕승(黃德升, 1810~,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 × 41.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해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문 / 국역
輓詞
通家世好接隣芳
蘭契荊圍進退場
三月天津橋上夜
杜鵑花淚雨聲長
傳家詩禮望西亭
玉樹門庭五柳靑
可惜西牕勤苦業
篝燈十載讀秋螢
西遊遠客洛陽都
歌鹿春風喚鳳雛
白玉樓前丹桂樹
舞山花落月輪孤
浮雲西去水東流
一馬雙旌送遠游
純古琹心絃已絶
海山無語月千秋
만사1)
대대로 교분 깊은 집안2) 이웃하여 살았기에
금란지교 나누면서 과장3)에도 함께 다녔네
삼월이라 천진교 위 두견이 울음 울던 밤4)
진달래5)도 눈물 흘리는데 빗소리 이어지네
망서정6)은 집안 대대로 시와 의례 전해오니
훌륭한 후손 있어 다섯 그루 버들7) 푸르구나
애석해라, 서쪽 창가에서 수고로이 애쓰면서8)
십 년 동안 호롱불과 반딧불로 책 읽었다네9)
서쪽 먼 길 길손은 냑양 도읍에 있더니
춘풍 속에 녹명장10) 불러 봉추같은 인재라
백옥루11) 앞 꺾었던 계수나무 가지12) 붉은데
무산향 가락에 꽃 지고13) 외론 달만 덩그렇네
뜬구름은 서로 가고 물은 동으로 흐르는데
말 한 필에 한 쌍의 명정 먼 길을 전송하네
순박했던 금심14) 이미 거문고 줄 끊었으니15)
해산은 말이 없고 달은 천추에 그대로구나
서쪽에 사는 이웃 황덕승16)이 곡하고 만사를 짓다[西隣黃德承哭輓]
1) 만사(輓詞) :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직은 글 또는 그 글을 비단이나 종이에 적어 기(旗)처럼 만든 것을 말한다. 만사(挽詞)라고도 한다. 만사는 1862년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의 상(喪)에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심능규의 자는 사룡(士龍)이고 호는 월포이외에도 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을 사용하였으며 본관은 삼척(三陟)으로 강릉에 살면서 『인경(仁經)』를 편찬하였다. 심능규는 1859년 증광시(增廣試) 진사시(進士試)에 70세의 늦은 나이로 급제하였다. 문집으로 『월포기(月圃記)』가 있다.
2) 대대로 교분 깊은 집안 : 원문의 통가(通家)는 ‘세교(世交)’와 같다. 집안끼리 대대로 친분을 쌓는 것을 세교라고 한다.
3) 과장(科場) : 원문의 ‘형위(荊圍)’는 과장에 가시나무로 울타리를 두른 것으로 과장을 의미한다.
4) 천진교(天津橋) ~ 울던 밤 : 중국 낙양(洛陽)에 있던 다리 이름이다. 송나라 소옹(邵雍)이 천진교 근처에 살았는데, 어느날 찾아온 손과 함께 천진교를 산보하다가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듣고는 몹시 좋지 않은 기색을 지었다. 손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예전에는 낙양에 두견새가 없었는데, 지금 비로소 이르러 온 것은 까닭이 있다. 앞으로 3년에서 5년 이내에 임금이 남쪽 인사들을 많이 등용하여 오로지 변경(變更)만을 힘쓸 터이니, 천하가 이로부터 일이 많아질 것이다.” 하자, 손이 또 묻기를, “두견새 소리를 듣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천하가 다스려지려면 지기(地氣)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려면 지기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법인데, 새가 그 기(氣)를 가장 먼저 받기 때문이다.” 한 데서 온 말로, 일반적으로 천하에 큰 변화가 곧 있게 될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심능규의 죽음을 말한 것이다.
5) 진달래 : 원문의 ‘두견화(杜鵑花)’는 진달래꽃을 말한다. 촉의 망제(望帝)가 나라를 빼앗기고 울다 죽은 후에 두견새가 되었는데 밤새 피를 토하며 울다가 죽었다고 하다. 두견새가 흘린 피 위로 붉은 꽃이 자라 두견화라고 한다. 두견새, 두견화 모두 한의 상징으로 여기서도 심능규의 죽음을 말한 것이다.
6) 망서정(望西亭) : 월포 심능규의 선조인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이 1538년(중종 33)에 김안로(金安老)를 인진(引進)했다는 이유로 대신의 탄핵을 받고 파직된 뒤에 손수 짓고 은퇴 생활을 했던 정자이다. 심언광은 호가 어촌(漁村)이다. 1513년(중종 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대사헌(大司憲)·의정우부참찬(議政右府參贊) 등을 역임하였다. 1537년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재임 때에 명나라 정사 공용경(龔用卿)과 부사 오희맹(吳希孟)의 접반사로 수창하고 교유할 정도로 시문에 뛰어났다.
7) 다섯 그루 버들 : 진(晉)의 도잠(陶潛)은 팽택의 현령으로 있을 때 상관(上官)에게 머리를 굽히기 싫어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집 옆에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고는 자칭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하였다. 『송서(宋書)』 권93 「도잠열전(陶潛列傳)」에 보인다. 여기서는 심능규가 심언광의 가학을 이어받은 훌륭한 후손으로 은거하여 자적며 지내고 있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8) 서쪽 ~ 애쓰면서 : 이 구절은 당(唐)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야우기북(夜雨寄北)〉 시에 “언제 함께 앉아 서쪽 창에서 촛불 심지 자르며, 파산의 밤비 내리던 때 얘기해 볼까.[何當共剪西窓燭 却話巴山夜雨時]”라고 한데서 가져온 구절이다. 황덕승이 함께 열심히 공부했던 심능규를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 구절로 나타낸 것이다.
9) 반딧불로 ~ 읽었다네 :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를 가져와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했음을 나타낸 것이다.
10) 녹명장(鹿鳴章) : 『시경(詩經)』 「소아(小雅) 녹명」을 말한다. 본래 임금이 신하를 위해 연회를 베풀며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후대에는 군현의 장리(長吏)가 향시에 급제한 거인(擧人)들을 초치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그들의 전도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11) 백옥루 : 옥황상제의 궁궐에 있다는 누각의 이름이다. 인하여 한양의 궁궐을 비유한다.
12) 꺾었던 ~ 붉은데 : 과거에 입격하는 것을 계수나무 가지를 꺾었다고 한다. 여기서는 심상규가 과거에 급제했던 사실을 형상화한 구절이다.
13) 무산향(舞山香) ~ 지고 : 송 때 서주 통판(徐州通判) 이도(李陶)의 아들이 평소 시 짓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낙화(落花)〉라는 시를 읊기를 “유수는 끝까지 바라보기 어렵고, 석양은 창자를 끊기 쉽도다. 누구런가 아광모(砑光帽) 쓰고서, 무산향 한 곡조를 연주할 이.[流水難窮目, 斜陽易斷腸. 誰同砑光帽, 一曲舞山香.]”이라고 하였다. 이도가 깜짝 놀라 물으니, 아들은 “서왕모(西王母)가 신선들에게 주연을 베풀었는데, 아광모를 쓰고 춤을 추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자 위의 잠화(簪花)가 〈무산향〉 한 곡조가 끝나기도 전에 모두 떨어졌습니다.”라고 대답한 고사가 『구지필기(仇池筆記)』 권상 「아광모」에 보인다. 여기서는 이를 원용한 구절로 심능규의 죽음을 형상화하고 있다.
14) 금심(琴心) : 거문고 소리에 부치는 연주자의 마음을 비유한다.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임공(臨邛)의 부호(富豪)인 탁왕손(卓王孫)의 딸인 과부 탁문군(卓文君)을 금심으로 유혹하여 함께 성도(成都)로 야반도주(夜半逃走)했던 고사가 『사기(史記)』 권11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 전한다.
15) 거문고 줄 끊었으니 :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이다. 백아(伯牙)가 종자기(鍾子期)의 죽음을 슬퍼해서 거문고 줄을 끊어 더 이상 연주하지 않았다고 한다.
16) 황덕승(黃德升) : 평해(平海) 황씨로 강릉에 거주하였다. 『사마방목』에 의하면, 황덕승은 1810년에 태어나 1880년 71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급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