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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황덕승 시문(黃德升 詩文)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91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시문류-시(詩)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9년 황덕승 시문 / 黃德升 詩文
- ㆍ발급자
-
황덕승(黃德升, 1810~,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59년 2월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黃羊中春上澣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4.3 × 5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衰秊七耊尙康寧~篙花三月望西亭', 苓, 星, 靑, 亭을 운자로 지은 시.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해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문 / 국역
謹拜呈 月圃丈行軒下
衰年七耋尙康寧
歌鹿春風詠隰苓
聖世東方君子鳳
仁天南極老人星
詩情雪入果園白
醉興雲登洛水靑
鏡裏黃客消息問
鶯花三月望西亭
월포1) 어르신이 계신 곳에 삼가 절하고 드리다
칠십이라 노년에도 여전히 강녕하여
춘풍 속에 녹명장2) 노래하고 습령3) 읊조려
태평성대 동방에 봉황4) 같은 군자들 있어
어진 하늘5) 남극의 노인성6) 빛나는구나
시의 정취 속 눈 날려 과수원은 하얗고
취기 오르자 구름 피어난 낙수 푸르구나
거울 속의 늙은 객에게 소식을 묻노라니
망서정7)은 꾀꼬리 우는 춘삼월이라네
1859년8) 2월 상순에 황덕승9)이 절하고 글을 짓다[黃羊中春上澣黃德升拜稿]
1) 월포 :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의 호이다. 심능규의 자는 사룡(士龍)이고 호는 월포(月圃)이외에도 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을 사용하였으며 본관은 삼척(三陟)으로 강릉에 살면서 『인경(仁經)』를 편찬하였다. 심능규는 1859년 증광시(增廣試) 진사시(進士試)에 70세의 늦은 나이로 급제하였다. 문집으로 『월포기(月圃記)』가 있다. 이 시는 심능규가 1859년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축하하는 작품이다.
2) 녹명장(鹿鳴章) : 『시경(詩經)』 「소아(小雅) 녹명」을 말한다. 본래 임금이 신하를 위해 연회를 베풀며 연주하던 악가(樂歌)인데, 후대에는 군현의 장리(長吏)가 향시에 급제한 거인(擧人)들을 초치하여 향음주례(鄕飮酒禮)를 베풀어 주며 그들의 전도를 축복하는 뜻으로 이 노래를 불렀다.
3) 습령(隰苓) : 『시경(詩經)』 「패풍(邶風) 간혜(簡兮)」에 나오는 시어이다. 시의 말장(末章)에 “산에는 개암나무가 있고, 진펄에는 연꽃이 있도다. 내 누구를 생각하는가, 서방의 그리운 님이로다. 저 그리운 님은 먼 서쪽의 사람이라오.[山有榛 隰有苓 云誰之思 西方美人 彼美人兮 西方之人兮]” 하였다. 이 시에서 그리운 님은 바로 주의 성왕(聖王)을 가리킨다. 이후 습령을 읊조린다는 것은 임금을 그리워 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4) 봉황(鳳凰) : 신화 속의 새이다. 새 중에 으뜸으로 동방 군자의 나라에서 나와 사해(四海)의 밖을 날아가 곤륜산(崑崙山)을 지나 지주(砥柱)의 물을 마시고 약수(弱水)에서 깃털을 씻으며 저녁에는 풍혈(風穴)에서 잠을 잔다고 한다. 이 새가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고 한다.
5) 어진 하늘 : 원문의 ‘인천(仁天)’은 『중용(中庸)』 제32장의 “정성스러운 그 인이며 고요하고 깊은 그 못이며 광대한 그 하늘이로다.[肫肫其仁 淵淵其淵 浩浩其天]” 한 데서 온 말이다.
6) 노인성(老人星) : 노인성은 남극 하늘에 떠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수성(壽星)이다.
7) 망서정(望西亭) : 월포 심능규의 선조인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이 1538년(중종 33)에 김안로(金安老)를 인진(引進)했다는 이유로 대신의 탄핵을 받고 파직된 뒤에 손수 짓고 은퇴 생활을 했던 정자이다. 심언광은 호가 어촌(漁村)이다. 1513년(중종 8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강원도관찰사(江原道觀察使)·대사헌(大司憲)·의정우부참찬(議政右府參贊) 등을 역임하였다. 1537년 이조판서(吏曹判書)로 재임 때에 명나라 정사 공용경(龔用卿)과 부사 오희맹(吳希孟)의 접반사로 수창하고 교유할 정도로 시문에 뛰어났다.
8) 1859년 : 원문의 ‘황양(黃羊)’은 ‘황금 양’를 말하는데 간지로 기미년을 지칭한다.
9) 황덕승(黃德升) : 평해(平海) 황씨로 강릉에 거주하였다. 『사마방목』에 의하면, 황덕승은 1810년에 태어나 1880년 71세의 나이로 생원시에 급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