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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이장오 간찰(李章五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70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62년 이장오 간찰 / 李章五 簡札
- ㆍ발급자
-
이장오(李章五,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62년 4월 18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戌四月十八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2 × 46.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62년 4월 18일 이장오(李章五)가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낸 상대가 언급한 것은 주선할 수 없어 들어 줄 수 없다는 내용의 간찰이다. 편지의 내용은 상대의 편지를 받고서 직접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 기쁘다고 하였다. 이장오 자신은 큰 병은 없어도 늘 건강하지 못해 편한 날이 적고, 아이들이 관아에서 보낸 소식을 얻어 들을 수 있고, 종손(從孫)들도 상중에 잘 지낸다고 안부를 전했다. 상대가 지시한 일은 우선은 기회가 없어 주선할 길이 없으니 송구하다는 내용이다. 간찰 A004_01_A00138_001번이 달성판관 이장오가 보낸 것이 있으므로, 장오는 이장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 1850년 4월 금산군수(錦山郡守)를 임명받았고, 1851년 11월에 대구판관(大邱判官)을 임명받아 역임하였다. 심능규는 뒤늦게 70세인 1859년(철종 10) 2월에 증광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이 편지를 받은 해는 그의 나이 73세로서 얼마 있지 않다가 8월쯤에 사망하였다.
원문
阻懷熲結卽拜惠札怡然慰豁無間對討間緣無便稽謝至今還庸悵歎更問動止連護晏重渾節均宜並切仰溯且慰弟縱免大恙身常不健寧日恒少勢也奈何但以家兒衙信連爲入聆從孫諸哀亦得支安慰幸何喩敎事姑無機會無路周旋不得仰副只切悚歎餘不備謝狀儀壬戌四月十八日弟章五拜
月圃令案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