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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이원조 간찰(李源祚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62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원조 간찰 / 李源祚 簡札
- ㆍ발급자
-
이원조(李源祚, 1792~1871,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840년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5 × 50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1840년 추정) 즉일에 이원조(李源祚, 1792~1871)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 등을 알리고자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긴 하나 어느 정도 안면만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또한 동일 발급자의 여타 서간을 통해 수신자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로 추정된다. 금일 상대의 편지를 받아서 뜨거운 날씨에 고요히 기거하는 일상이 여러모로 보호된다는 점을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했다. 자신은 근래에 기력이 쇠하여 염식증(厭食證)에 걸려 날마다 신음만 일삼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구폐(救弊)에 관한 일은 결국 포세(布稅) 납부 기한만 물려준 것에 불과하니, 그간에 약간 첨보(添補)할 잉미(剩米)를 두었다 해도 오래된 포장(逋帳)의 반수를 감당하기에도 부족하여 다만 경법(經法)을 훼손하면서 보고했다고 했다. 그리고 뒷말에 백성에게 조금 이익이 있을 것이라 하여 따르지 않을 수 없었지만 당초의 향회(鄕會)에서 결정한 본의는 아니었다고 하면서 부끄럽고 탄식스럽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한 일은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뒤에 살펴 처리하겠다고 했다. 끝으로 존문하는 것에 관한 일 역시 어렵지 않은 청이므로 조만간 부응 해 드릴 생각이라고 했다. 본문에 언급된 ‘구폐’의 경우 당시 강릉 지역에 부과된 각양의 미납한 세금이 많아 이를 바로잡는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원조가 강릉부사로 재직할 당시인 1840년의 『승정원일기』를 참조하면, 5월 25일 비국당상 인견입시 때 행이조판서(行吏曹判書) 권돈인(權敦仁)이 각 도의 작년 세금의 미수분을 엄독하는 일을 언급하며 “강릉부사 이원조 등은 각양의 미납세수가 거다(居多)하다.”고 보고하고 있고, 10월 25일 이원조가 올린 상소에는 강릉부사로 부임한 뒤 살펴본 결과로서 민력이 고갈되고 포장(逋帳)이 늘어난 폐단과 이에 대한 해결 등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간찰은 그가 강릉부사에 재직 당시인 1840년, 본문의 ‘뜨거운 날씨[日熱]’라고 한 언급으로 약 5월경에 발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당시 지방의 수세(收稅) 실정과 폐단 등을 단편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이원조는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본관은 성산(星山), 부는 이규진(李奎鎭), 생부는 이형진(李亨鎭)이다. 순조 9년(180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제주목사‧경주부윤‧공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또한 그는 강릉부사도 지냈는데,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1840년 4월에 부임하여 1841년 1월에 제주목사에 제수되어 체개되었다. 강릉부사를 역임한 이력을 통해 강릉지역 세거 양반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이므로 이 간찰의 수신자와의 관계가 유추된다. 시호는 정헌(定憲)이다. 저서로는 『응와집』이 있다.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國朝榜目』 卷9 (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貴11655] p.43) 『承政院日記』 <憲宗 6年(1840) 5月 25日 등> 李源祚, 『凝窩集』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참고자료
원문
拜謝上卽拜審日熱靜履動止萬護區區慰仰記下近以憊敗厭食之證日事呻(口+楚)已極愁悶而所謂救弊畢竟只退期布稅而已其間雖有若干添補之剩而不足以當舊逋之半只毁經法而報後言以少有利於民故不得不從而非當初鄕會之本意也慚歎何言示事此亦知之稔矣從當量處矣存問事亦非難之請早晩仰副計耳適擾不備謝卽源祚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