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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교희 간찰(金敎喜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132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7년 김교희 간찰 / 金敎喜 簡札
- ㆍ발급자
-
김교희(金敎喜, 1781~1862,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7년 6월 3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酉六月三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0.5 × 40.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37년 김교희(金敎喜, 1781~1843)가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낸 간찰이다. 김교희는 자는 수여(修汝), 본관은 경주(慶州)로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 1720~1758)의 증손이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종형이다. 생원시와 문과에 합격하여 승지에 이르렀다. 이 간찰을 작성할 당시에는 우승지를 사직하고 부호군(副護軍)의 군함을 띠고 있었다. 수신자는 명숙공종가 소장 간찰 목록에서 경주김씨 인물들이 보낸 간찰의 수신자를 검토하면 삼척심씨 인물 중 한 사람인데, 작성 시기를 감안하여 심능규로 판단하였다. 심능규는 강릉에 거주한 사족이다. 자는 사룡(士龍), 호는 호은(湖隱)ㆍ신천당(信天堂)ㆍ천청당(天聽堂)ㆍ월포(月圃),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1859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저서에 월포기(月圃記), 인경부주(仁經附註)가 있다. 이 간찰은 김교희가 심능규의 위문편지에 답장한 편지이다. 지방 사족이 의례 등을 매개로 중앙의 문벌과 관계를 맺었던 일면을 살필 수 있게 한다. 강릉 창녕조씨 소장 간찰의 대부분이 심능규 등 삼척심씨 인물들에게 보내진 것인데, 조옥현 가의 외가가 삼척심씨이므로 어느 시기에 다량의 삼척심씨 소장 문서가 조옥현 가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먼저 김교희는 계부(季父)의 상을 당한 자신의 애통한 심정을 표현하고, 장례 및 우제(虞祭)와 졸곡(卒哭)을 마치고 난 이후의 애통한 심사도 전하였다. 여기에 언급된 계부는 이해 3월 30일에 작고한 추사의 생부인 유당(酉堂)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을 가리킨다. 이어 이러한 때에 심능규가 위장을 보내준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김교희는 상을 당한 이후 숙질(宿疾)이 악화되어 매우 고민이라며 근황을 전하였다.
최호, 수집사료해제집7, 국사편찬위원회, 2013
원문
省式家門不幸間遭季父喪變痛哭之外夫何言喩日月如流襄事奄過虞卒已畢俯昻慟廓益復如新卽蒙尊慈俯賜慰問哀感之至且審近熱靜候益勝欣慰無已朞服人喪威之餘宿疾添苦苦悶何狀餘末由面訴尤增哽塞姑不備狀禮丁酉六月三日朞服人金敎喜狀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