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1849년 이광재 간찰(李光載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93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9년 이광재 간찰 / 李光載 簡札
- ㆍ발급자
-
이광재(李光載,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3.5 × 24.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49년 6월에 이광재(李光載)가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낸 강릉부사(江陵府使)와의 관계는 상대의 지시대로 하겠다는 내용의 간찰이다. 편지의 내용은 늦더위에 상대가 여행하는 가운데 편안하다는 것을 알아 위안이 된다고 하였다. 고향에 돌아갈 날짜를 듣고 보니 필시 답답할 것으로 생각되어 염려가 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상대 고을에 수령이 본래 알던 관계가 아니라서 편지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하였다. 만약 같이 온다면 알려준 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이광재 자신은 지난 도목정사에서 풍천부사(豊川府使)에 수망으로 낙점되었다가 다시 말망에게 밀렸으니 자신의 운수라며 푸념을 전하는 것이다. 『승정원일기』에 이광재는 1848년 12월에 풍천부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1849년 5월에 아직 임지에 도착하지 않은 수령들을 재촉하여 19일에 풍천으로 내려갔다고 나온다. 그러므로 본 편지의 연대를 추측할 수 있겠다. 이와 동시에 사료의 기사는 풍천으로 갔다고 하는데, 기간이 조금 더 뒤지만 편지의 내용은 이와 다른 면모를 보이므로 좀 더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겠다. 그리고 상대 고을의 수령이라는 것은 1848년 박회수(朴會壽)가 강릉부사를 임명받았으므로 정확하게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겠다.
원문
謹謝上阻仰中卽拜惠書謹審晩炎比劇旅候動止增衛萬重仰慰仰慰第承還鄕定籌想必弸鬱難裁奉慮何已貴倅果是素昧書面間非所可論從當若有聯臂處則敢不如戒耶弟昨政入豊川首擬見奪於末擬一飽儘關命數奈何餘惟希行李保重姑不備禮卽回弟光載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