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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년 김일연 간찰(金逸淵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83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1년 김일연 간찰 / 金逸淵 簡札
- ㆍ발급자
-
김일연(金逸淵, 1787~1866,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51년 6월 1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辛亥六月十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0 × 41.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신해년(1851) 6월 16일에 승지(承旨) 김일연(金逸淵, 1787~1866)이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내는 답장 간찰이다. 주요 내용은 상대방이 부탁한 일에 대해서 힘만 닿는다면 주선하지만, 좋은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6월과 12월에는 도목정사(都目政事)가 있었다. 이러한 인사이동 시기를 앞두고 심능규가 승지, 이조참판 등 서울 요직에 있는 이에게 관직을 청탁하는 일이 여러 간찰에서 보이는데, 혹 이 편지도 그와 관련된 편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관직 청탁이 본인의 자리인지, 혹은 지인의 자리를 부탁하는 것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강릉(江陵)에 사는 심능규로서는 김일연을 통해 서울 소식을 묻고, 그 대신 지방에서 생산되는 물품을 선물로 보내는 일이 많았던 것을 본 편지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지방은 물산이 서울로 집중되고, 서울의 인사이동이나 시사(時事) 등의 정보가 편지를 통해 지방으로 확산되는 점을 알 수 있다. 발급자 김일연은 자는 임지(任之), 본관은 연안(延安), 부는 김갱(金鏗)이다. 순조 10년(1810) 추도기유생 과강 때 강경(講經)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직부전시 되었다. 이후 사간‧지평‧홍문관 수찬‧사간원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그는 강릉부사도 지냈는데,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1833년에 부임하여 1835년에체개되었다. “말미를 받아 서울로 올라온 뒤 그대로 체직됨[受由上去仍遞]”이라고 기록되어있다. 강릉부사를 역임한 이력을 통해 강릉지역 세거 양반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이므로 이 간찰의 수신자와의 관계가 유추된다.
원문
[皮封]
月圃靜座下回納
冶洞金承旨謝狀
月前爲付一扇付書于邸家矣尙未入照否潦炎莫比酷勞仰方深卽拜今初二出惠書謹審比來靜候萬重是則仰慰而第兒慽聞不勝驚慘萬萬弟狀姑依而近以老室之暑症日事惱擾愁亂何喩示意謹悉而如有力所及處則何待提飭之有無而圖之耶然而百爾思之姑無好逕蹊是用悶沓京耗別無可言者前書有略干其槩耳惠送二種認出情念感荷僕僕餘客擾姑不備謝辛亥六月十六日弟逸淵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