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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이원신 간찰(李元信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6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7년 이원신 간찰 / 李元信 簡札
- ㆍ발급자
-
이원신(李元信,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7년 3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酉三月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1 × 4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정유년(1837)] 3월 19일에 기하(記下) 이원신(李元信)이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낸 간찰이다. 주요 내용은 양례(襄禮)를 앞두고 근심스러운 사정을 전하고 상대방의 유람 요청에 훗날을 기약하자며 양해를 청하는 것이다. 심능규의 자는 사룡(士龍)이고 호는 월포(月圃)·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이며 본관은 청송(靑松)으로 강릉에 살면서 『인경부주(仁經附註)』를 편찬한 인물이다. 이원신은 상중에 있는 자신의 조카가 산소 자리를 살펴보러 지협(砥峽)에 간다는 내용을 언급하며, 사력(事力)이 전혀 두서가 잡히지 않는다고 한탄했는데, 조선시대 양례(襄禮)를 지내는 일에 많은 물력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예법이 발달한 조선에서는 상채(喪債, 초상을 치르기 위한 빚)가 상당히 과중했는데, 이 편지에서도 상가(喪家)에서 양례로 인해 가지는 부담감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본 편지는 심능규 측에서 누각에 오르거나 경호(鏡湖)에서 배를 띄우고 놀자며 초대했던 것으로, 늦봄을 맞아 풍류를 즐기는 당대의 모습도 알 수 있다.
원문
嚮者暫拜至今慰幸不意便中伏承盛牘從審和煦靜體動靖一味晏重寶眷均謐區區何等仰喜之至記下慈癠近益添頓日事刀圭外他憂撓鎭日侵尋種種悶私如何勝喩哀侄姑無顯𧏮今日作砥峽看山之行襄期未及涓擇而事力茫無頭緖見甚悶然秋間負笈之計當觀其時事勢而圖之何必預期也諒之也嘯咏登樓携酒泛湖大關十分淸福當有奇會恭俟後期而世間萬事之周全恐難如意好呵好呵餘劇撓略此仰謝不備書例丁酉三月十九日記下李元信再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