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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김도희 간찰(金道喜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56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2년 김도희 간찰 / 金道喜 簡札
- ㆍ발급자
-
김도희(金道喜, 1783~1860,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2년 9월 4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壬寅九月初四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2.3 × 43.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임인년(1842) 9월 4일에 심제(心制) 중인 전 경상도 관찰사 김도희(金道喜, 1783~1860)가 월포 심능규(1790∼1862)에게 보낸 답장이다. 발신자 김도희(金道喜)는 조선후기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사경(士經), 호는 주하(柱下)이며,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판서 김노응(金魯應)의 아들로, 1813년(순조 13) 증광 문과에 급제하여 청요직을 거쳐 이조참판·경기도관찰사·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고 1843년 좌의정에 올랐으며, 1851년 실록총재관이 되어 『헌종실록(憲宗實錄)』을 편찬하였다. 이 간찰을 쓰기 전인 1840년까지 경상도 관찰사에 재직하였다. 한 해가 지나도록 소식이 막힌 것은 일의 형편상 그런 것이지만, 자신이 여름에 전체(轉禠)를 통해 보낸 편지가 도중에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정을 전한 뒤, 오늘 상대방이 보낸 편지를 받고 잘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로되었다고 하였다. 이어서, 상대방이 그 사이에 당한 상(喪)을 언급하고, 과거시험은 잘 치러 높은 등급을 받았는지 물은 뒤에 자신은 수년 이래로 노쇠함이 날로 심해져 자주 병을 앓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였다. 본론으로, 상대방이 편지에서 말한 뜻은 잘 알았으나, 영읍(營邑)을 막론하고 모두 자신이 친숙한 곳이 아니라서 애초에 헤아려 논의할 수 없으니 이를 이해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심제(心制)는 예법상 상복은 벗었으나 슬픔이 가시지 않아 대상(大祥)이 지난 뒤 담제(禫祭)까지 입는 복을 말한다. 전체(轉禠)는 바로 가는 인편이 아니라, 이 사람 저 사람의 손을 거쳐 편지를 전하는 것을 말하며, 전편(轉便)이라고도 한다. 이 간찰을 통해 심능규가 중앙관직에 있는 인물들과 폭넓게 교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자세한 것은 파악할 수 없으나 이러한 인간관계를 활용하여 영읍에 관한 일을 해결하려 노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문
頓首貽阻經年事勢固然而夏間轉禠認是沈浮也卽拜惠狀仰慰靜候之增衛第間遭服制何等驚慘之至秋圍阮善觀光果占高解耶心制人堇存頑縷只益撫時之慟而數年以來衰憊日甚種種呻囈悶憐何喩示意備悉而無論營邑俱非親熟之地此等往復初不可擬議幸諒之如何餘不備狀式 壬寅九月初四日心制人道喜頓首
月圃沈碩士宅回納 貞洞謝狀頓首謹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