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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홍재철 간찰(洪在喆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51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3년 홍재철 간찰 / 洪在喆 簡札
- ㆍ발급자
-
홍재철(洪在喆, 1799~?,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3년 9월 1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癸巳九月十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2.8 × 44.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안부 인사와 상을 당한 심경 등을 전하는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계사년(1833) 9월 19일 홍재철(洪在喆, 1799~?)이 심 석사(沈碩士)에게 상중에 있는 자신의 안부를 전하기 위해 보낸 답장이다. 고애자는 부모를 다 여의고 상중에 있는 자기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먼저 머리를 조아린다고 하면서, 가을 기운이 날로 깊어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다. 심 석사는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를 말하는데, 월포가 쓴 『인경(仁經)』을 언급하기 때문이다. 귀하의 원고 『인경』의 ‘서문’을 자신의 외숙에게 청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평소 말씀과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없어서 끝내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이를 어찌하냐고 하였다. 『인경』은 심능규의 저서 『월포기(月圃記)』 중 「근대책문(謹對策問)」에 언급되는데, 총 7책으로 엮었다고 나온다. 한편 자신은 상중에 있으면서 겨우 목숨을 보전하며 시물(時物)을 살피고 있다면서 더욱 애통하다고 하였다. 또 사제(舍第)의 종상(終祥)을 지내고 원통함과 회한이 자리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형영상조(形影相弔) , 곧 아무도 없고 자신의 몸과 그림자만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하였다. 고애자인 데다가 아우마저 세상을 떠나 종상을 치르고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 신세를 표현하였다. 홍재철의 자는 치경(致敬),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816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827년 한림소시(翰林召試)에 뽑혔으며, 이듬해 별겸춘추(別兼春秋)를 지냈다. 1834년 시관(試官)에 임명되었으면서도 패초(牌招)를 받고 나오지 않아 장성부(長城府)로 귀양갔다가 곧 풀려난 뒤 예방승지로 기용되었다. 1840년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다음 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한성판윤·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845년 평안도지방이 극심한 수재(水災)를 당하자 백성들을 안정하여 살 수 있도록 방도를 강구하라는 특별 분부를 받고 평안도관찰사에 부임하였다. 1846년 사헌부대사헌·한성판윤, 형조·병조·공조·예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다. 1860년 경기관찰사를 2년간 지내고 돌아와 판의금부사, 예조판서·의정부우참찬을 지냈다.
원문
稽顙秋氣日深政爾詹耿卽拜審比來靜養起居連衛萬重哀慰不任貴藁仁經序文事請於渭陽而以平日之無文字酬應終未承應諾此將奈何至若屬之此身之敎非但不將嘗果不諒此迷執而有此示耶孤哀子頑喘支離撫時增慟而又過舍弟終祥觸處寃恨形影相弔穹壤之間豈有如此身情不分也哉多少便促 荒迷不次
癸巳九月十九日孤哀子洪在喆疏上
沈碩士宅回納鏡湖
安洞洪判書謝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