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디렉토리 분류 > 분류정보
1837년 임정상 간찰(任鼎常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40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7년 임정상 간찰 / 任鼎常 簡札
- ㆍ발급자
-
임정상(任鼎常, 1765~?,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37년 1월 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丁酉正月初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1.5 × 41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정유년(1837) 1월 9일에 임정상(任鼎常, 1765~?)이 보낸 간찰이다. 임정상의 본관은 풍천(豐川), 자는 응숙(凝叔)이다. 1807년(순조 7) 알성시 병과 1위로 급제하여 곧바로 가주서로 임명되었고 이후 승정원, 사간원, 병조 등 중앙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820년대 이후에는 주로 승지로 재직하다가 1831년(순조 31) 강릉부사에 임명되며, 1833년(순조 33)에는 대사간에 임명되어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임정상의 활동은 1837년 1월 12일이 끝이며 이후의 행적은 자세하지 않다. 5월 그믐간의 시취(詩趣)는 집으로 부친 편지와 부채를 통해 잘 전해졌는지 자세히 알 수 없는데 이후로 연락이 막혀 매우 서글펐고, 새해에 추위가 풀리지 않은 가운데 어떻게 기거하시는지 알 수 없으나 많은 복을 받기를 바란다는 말로 첫인사를 하였다. 이어서 자신은 나이를 먹을수록 병이 더해지지만 집안이 별 탈 없이 편안하니 다행일 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과거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 서울에 도착할 예정이나며 그동안 소식이 끊긴 것에 대해 이야기한 뒤 영동지방의 흉년은 강릉과 삼척이 더욱 심하다고 하는데 작년에 귀하의 장토는 추수에 낭패가 없었는지 묻고 일력을 함께 보낸다는 말로 끝맺음하였다.
원문
仲夏晦間討邨家便付書兼扇追聞或傳或不傳未得其詳而伊後便阻無異誅域悵想之極只勞心神獻發有日寒威未解未審此時靜履起居迓新增祉溯昻區區弟齒添而病加但以家間之粗安爲幸耳會圍不遠果能畜銳伺發而將欲何間發程到京耶奉展之難固爲無恠而書亦間闊無由得聞安信可謂問聞之莫憑可鬱臘月適聞有便作書以待旋聞人發尙今咄咄嶺東遭歉而江三尤甚云昨年貴庄所收得不至狼狽耶遠念而已一曆非但太些雖已後時旣前封置者故玆庸付記不在拘而可領其情耶還呵餘聞便略此不宣狀例丁酉正月初九日弟鼎常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