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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6(1837)년 홍시모 간찰(洪蓍謨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37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36(1837)년 홍시모 간찰 / 洪蓍謨 簡札
- ㆍ발급자
-
홍시모(洪蓍謨, ?~1837,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소평 정안(小坪 靜案)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6.9 × 39.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안부를 묻고 말씀하신 내용은 피차가 서로 양해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는 내용의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36년(헌종 2) 혹은 1837년(헌종 3)에 강릉부사 홍시모(洪蓍謨, ?~1837)가 북평(北坪)에 보낸 간찰이다. 홍시모의 본관은 풍산(豐山)이며 자는 영지(永之)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의 음안(蔭案)에 따르면 기유생(1788)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서울대학교 규장각의 음보(蔭譜)에 따르면 무신생(1789)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홍시모는 승지를 지낸 홍희응(洪羲膺. 1756~?)의 아들로 태어나 1822년(순조 22) 음관으로 산릉참봉에 제수되었고 1827년(순조 27)부터 양지현감, 마전군수, 연안부사를 거쳐 1836년(헌종 2) 강릉부사에 제수되었다. 피봉에 날인된 강릉부사의 관인과 본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이 간찰은 홍시모가 강릉부사를 역임했을 당시에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피봉의 북평은 강릉 북평촌(北坪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서글픈 와중 혹독한 추위에 안부는 어떠한지 묻고 그립다는 말로 첫인사를 하였다. 공복인(功服人) 홍시모는 병세가 가라앉지 않아 걱정스러운 상태이다. 다만 그저께에 고을 백성 장지홍(張之弘)의 소송으로 인해 판결을 내렸는데, 이 소송에 수신자의 조카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듣게 되었으니 매우 불행스럽다고 하였다. 이 소송은 사안이 공정함과 관계된 것이라 감영에서 의롭게 처리하라는 권고를 내렸고 본 사건을 이미 감영에 보고했기 때문에 지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서 집안의 일들을 돕고 싶어도 도울 수가 없는 형편이니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말해 달라고 하면서, 모레까지 힘 닿는대로 입송(入送)한다면 피차 다행일 것이니 이 점을 헤아려 도모함이 어떻겠냐고 권유하고 있다. 또 일의 형세와 그 이면이 매우 긴박하여 이번 초하루까지 관련 자료를 모두 거두어 감영에 급히 보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계획을 말하며 양해를 구하고는 조보는 읽어본 뒤 버리라는 말로 끝맺음하였다.
원문
間阻悵仰不審雪沍靜中震艮崇護毖重仰溸仰溸功服人病勢一直無減是悶是悶第再昨因邑民張之弘所謂有所決處者矣始聞令咸果遭此訟云不幸甚矣本訟事係明正且況候江民自營旣設勸義之擧本事已爲轉報則今無濶狹將奈何雖知咸氏家事愛莫助之此意詳布後再明內隨所力入送則彼此幸矣諒此圖之如何事勢與裡面甚爲時急今朔內似可畢捧而馳報者耳勢巧如右玆以仰告庶可恕諒也不備朝報覽後卽投企企 卽功服人洪蓍謨拜
北坪靜案侍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