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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홍우섭 간찰(洪祐燮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26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홍우섭 간찰 / 洪祐燮 簡札
- ㆍ발급자
-
홍우섭(洪祐燮, 1770~?,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심능규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8.8 × 49.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 즉일에 홍우섭(洪祐燮, 1770~?)이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을 알리기 위해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자신을 ‘記末’로 표기한 것으로 보면 평교 이하의 안면만 있던 사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처음 ‘절하며 답장 올린다[拜謝上]’는 말로 기두를 적은 뒤, 상대를 흠앙하던 차에 편지를 받게 되어 황급히 받들어 뜯어보고는 보고 싶던 마음에 조금 위로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겹겹이 쌓인 고개와 머나먼 길을 다녔던 뒤 끝에 손절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되니 매우 염려된다고 하였다. 상대가 과거 본 일은 잘 되길 옹망하던 나머지에 결국 낙방하게 되었으니 탄식이 나온다고 하였고, 자신은 참보(慘報)를 들은 뒤로 심신이 안정되지 못하고 있는데, 매형을 남교(南橋) 가에서 송별한 뒤로는 가고 머무는 정에 더욱 참담한 심경이 든다고 하였다. 본문에서 언급한 ‘참보’는 보통 ‘원서(寃逝) 또는 참서(慘逝)를 당한 부고’를 의미하는데, 부모 시하의 자식이 요절한 경우 주로 사용되었던 용어다. 따라서 정황상 발급자 매형의 자식 즉 자신의 조카 상을 당했던 것으로 유추가 가능하다. 또한 수신자가 ‘중령원로(重嶺遠路)’를 다니게 된 사연은 뒤이어 언급한 과거를 보러 다녔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명숙공 종가의 종손인 조석삼(曺錫三, 1813~1896)은 1888년 사마시에 입격한 뒤 같은 해 및 1890년에 수직(壽職)을 받은 이력이 있어서 ‘노유로서 특별히 과거를 보러 다녔다’는 말과 다소 맞지 않는다.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의 경우 여섯 차례 향시에 들고도 번번이 회시에 낙방했고, 1859년 70세의 나이에 겨우 진사가 되었다는 것으로 보면 수신자는 심능규로 보이나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사연들을 통해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실제 일상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홍우섭은 자는 치응(穉膺), 본관은 남양(南陽), 부는 홍병심(洪秉心)이다. 1800년 별시문과 병과 1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병조정랑‧자여도찰방‧예조정랑 등을 역임한 이력이 확인된다. 또한 그는 강릉부사도 지냈는데, 『강릉부사선생안(江陵府使先生案)』에 따르면 1827년에 부임하여 1829년에 “근면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속이고 가리는 일이 많다.[非不勤勵 奈多欺弊]”고 한 폄제(貶題)를 받고 파직 된 것으로 나온다. 강릉부사를 역임한 이력을 통해 강릉지역 세거 양반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이므로 이 간찰의 수신자와의 관계가 유추된다.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 ·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 · 율곡연구원,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3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서도기획, 2020.
참고자료
원문
拜謝上欽仰之際忽拜惠狀忙披奉玩稍慰耿耿之懷雪嶺遠路行役之餘想多損節爲之貢慮憧憧不已老儒科事顒祝之餘竟歸無味歎將何及鄙狀依昨而自聞慘報心神靡定送別妹兄於南橋之上去留之情尤切慘慘餘留拜不備禮卽旋記末洪祐燮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