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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3년 홍의호 간찰(洪義浩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25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93년 홍의호 간찰 / 洪義浩 簡札
- ㆍ발급자
-
홍의호(洪義浩, 1758~1826,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 1793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3.1 × 45.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신년을 맞는 자신의 소회와 진휼에 관련된 일 때문에 날이 갈수록 괴롭다는 것을 전하고, 都政과 貶目을 돌려달라는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1793년 추정) 즉일(정월 3일)에 홍의호(洪義浩, 1758~1826)가 안부를 주고받고 근황을 알리기 위해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자신을 ‘戚下’로 표기하고, 이름 대신 ‘逋’를 적고 있어 상대와 서로 인척관계이자 평교 이하의 관계 정도로 보인다. 새해가 된 지 이미 3일이나 지나 상대가 그립던 차에 편지를 받고 안부를 알게 되어 위로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집을 떠나 객지에서 새해를 맞이하면서 부친의 소식도 곧바로 받을 길이 없어 매우 답답하다고 하였다. 진휼에 관한 일은 나날이 더욱 심해져 고민이라고 하였고, 종형이 돌아간 뒤 연일 안부 소식은 받지만 도목정사 때 올린 베껴 오지 않은 폄목(貶目)은 늦게라도 돌려주기를 촉구하였다. 피봉에는 수신자의 거주지 또는 택호로 ‘坫坪’을 적었는데, ‘坫’은 ‘坮’와 통용되므로 경포대 근방 들판 지명에 ‘坫坪’ 또는 ‘坮坪’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본문에 ‘이 편지를 운정에도 전해달라[此書傳于雲亭]’고 기록한 정황으로 보면, 수신자는 해운정(海雲亭) 주인이었던 월포(月圃) 심능규(沈能圭, 1790~1862)의 형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급연도의 경우 발급자가 여타 간찰 피봉에 자신의 소재지로 ‘七事堂’을 기재한 점, 내용 가운데 ‘진휼’, ‘폄목’과 같은 용어로 추정컨대 강릉부사 재직 당시인 1792-1794년 사이에 발급한 것으로 보인다. 『일성록』 <정조 17년(1793) 5월 24일>기사에 실린 도내 진휼을 설행하는 일에 관하여 강원감사 신기(申耆)가 올린 장계의 별단(別單)에, 강릉부의 경우 “397석 14두는 강릉부사 홍의호가 자비함[三百九十七石十四斗 府使洪義浩自備]”라고 기록한 내용이 보인다. 따라서 이 간찰의 발급연도를 1793년으로 추정 할 수 있다. 이 간찰을 통해 당시 흉년 때 국가에서 시행한 진휼정책이 지방에서 시행되었던 실제 정황을 엿볼 수 있고, 정기 인사제도였던 도목정사의 시행과 포폄계본‧세초단자 등을 작성‧행문했던 과정 등과 맞물려 이를 단편적으로 실증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발급자 홍의호는 자는 양중(養仲), 호는 담녕(澹寧), 본관은 풍산(豊山), 부는 홍수보(洪秀輔), 홍인호(洪仁浩)의 아우이다. 1784년 정시문과 병과로 급제, 초계문신에 선발되었다. 대간 및 도승지‧강릉부사‧강화유수‧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정헌(正憲)이다. 저서로 『담녕집』 등이 있다.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 · 『國朝榜目』 卷8(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8] p.125)
- · 『承政院日記』 <正祖 17年(1793) 5月 22日‧24日>
- · 『日省錄』 <正祖 17年(1793) 5月 24日>
- · 심능규 저/신상목 역, 『강원 국학자료 국역총서05 월포기』, 율곡연구원, 2023.
참고자료
원문
獻發已三日矣政有耿仰拜審新正動止衛重仰慰且賀戚下離違送歲情理難抑新年庭信無由卽承尤菀尤菀賑事焦勞日甚一日悶憐奈何從兄歸後連得安音耳都政送上貶目無謄來者晩還如何此書傳于雲亭爲望不備謝卽戚下逋【洪義浩】拜謝
坫坪座下回納[手決]謹封[着圖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