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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윤응규 간찰(尹應圭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23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윤응규 간찰 / 尹應圭 簡札
- ㆍ발급자
-
윤응규(尹應圭, 1800~1855,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함께 기탁된 여타 간찰의 발급자가 대부분 정조‧순조 대 명신들로 수신자와의 교유관계를 알 수 있으므로 이 간찰의 발급자 역시 순조 대 임준상(任俊常)‧홍의호(洪義浩) 등과 함께 청요직을 역임한 송응규(宋應圭, 1765~1823)로도 판단 가능하나, 본문의 ‘강원감영에 공무로 다녔던 상황’ 등으로 판단하면 강릉부사 재직 당시의 윤응규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8.8 × 43.2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營下로 가는 행차는 길이 험할 뿐 아니라 병때문에 어떻게 배정해야 할 지 모르고 내년의 慶科는 庭試로 설행할 것 같다는 내용의 편지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1854년 추정) 즉일에 윤응규(尹應圭, 1800~1855)가 안부를 주고받고 자신의 근황을 알리기 위해 발급한 간찰이다. 발급자는 상대에 대해 자신을 ‘記下’라고 표현하여 평교간이긴 하나 어느 정도 안면만 있던 사이로 추정된다. 매우 추운 날씨에 상대가 그립던 차에 편지를 받아 밤사이에 여러모로 건강을 보중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된다고 하였다. 이어서 숙병에다 한질이 더쳐 두통, 견인통, 담수증 등으로 고생하면서, 강원감영으로 가는 일은 단지 길의 험난한 뿐만 아니라 병세가 이와 같아 난감하다는 등 자신의 근황을 알렸다. 난지축(爛紙軸)은 잘 받았다고 하며 계속 보내주면 잘 읽어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내년의 경과(慶科)는 정시(庭試)로 설행될 듯하다고 하나 아직 정확한 소식은 듣지는 못했다고 하였다. 발급자 윤응규는 자는 여동(汝同), 본관은 파평(坡平), 부는 윤광호(尹光濩)이다. 1827년 소과 증광시 진사 3등으로 입격한 뒤 음관으로 현륭원 참봉 등을 역임했고, 1854년 9월 강릉부사에 부임하여 이듬해 1855년 1월 관사에서 사망했다. 함께 기탁된 여타 간찰의 발급자가 대부분 정조‧순조 대 명신들로 수신자와의 교유관계를 알 수 있으므로 이 간찰의 발급자 역시 순조 대 임준상(任俊常)‧홍의호(洪義浩) 등과 함께 청요직을 역임한 송응규(宋應圭, 1765~1823)로도 판단 가능하나, 본문의 ‘강원감영에 공무로 다녔던 상황’ 등으로 판단하면 강릉부사 재직 당시의 윤응규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렇다면 본문에 언급된 ‘경과’는 1854년의 경우로 본다면 ‘경모궁(景慕宮) 추상존호(追上尊號)’ 경과였을 것이다. 즉 1855년은 경모궁 탄신 재회갑이 되는 해로, 바로 전 해인 1854년 11월경부터 추상존호와 관련 의절 및 경과 설행 등을 논의했던 사실이 『실록』 등에 보인다. 그리고 만일 발급자가 송응규라고 하더라도 그는 정조 19년(1795) 도기유생 제술과강 때 강경(講經)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직부전시 된 사례는 『일성록범례』 「의주등록(儀註謄錄)」의 한 사례로 편입되기도 한 명신이다. 따라서 이 간찰은 당대를 살았던 명신의 필적을 확인할 수 있고, 특히 내용 가운데 ‘난지축’이 중앙관사에서 개인에게 전달되어 열람 된 경위, 경과 설행 시 정시나 증광시 여부를 임금의 재가를 받아 결정되었던 실 사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적 가치가 있다. 또한 ‘爛紙’는 승정원에서 매일 아침 조정에서 처리된 일들을 적어 돌리는 ‘조보(朝報)’의 이칭인데, 축으로 엮은 형태로도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난지’가 ‘정리되지 않은 소편(小片)의 기록물’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어서, 승정원 주서가 국왕이 내린 비답‧판부‧전교‧초기‧비망기 등을 『일성록』에 등록하기 전에 기록한 소지(小紙)들을 축으로 엮은 전교축(傳敎軸)일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수신자는 당시 승정원 재직관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 『各司謄錄』 「忠淸監營啓錄○高宗」 <高宗 10年(1873)>
- · 『江陵府使先生案』 (국립중앙도서관[古2196-1])
- · 『國朝榜目』 卷8(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K2-3538] p.169)
- · 『承政院日記』 <哲宗 5年(1854) 11月 16日>
- · 『日省錄凡例』 「儀註謄錄」
- · 『哲宗實錄』 卷6 <哲宗 5年(1854) 11月 3日>
참고자료
원문
雪尙之風寒威斗劇瞻溸政爾憧憧卽拜審動止夜來萬重慰寫殊不淺記下病積之中又添寒疾頭疼也臂牽也痰嗽時則一倍難堪苦悶何喩營下之行非但路難病狀又如此姑未知何以爲定耳爛紙軸依到而繼此有下來者則當奉覽矣明歲慶科似以庭試設行云而姑未聞的奇耳餘留不備謝上卽回記下應圭拜
拜謝上[着圖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