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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윤치용 간찰(尹致容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10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59년 윤치용 간찰 / 尹致容 簡札
- ㆍ발급자
-
윤치용(尹致容, 1798~?, 조선)
원문내용: 記下尹致容拜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28 × 41.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859년 윤치용(尹致容, 1798~?)이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낸 간찰이다. 윤치용은 강릉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자는 대수(大受), 시호는 효헌(孝獻),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1858년 12월 20일에 강릉부사에 임명되었고 1860년 4월 21일에 광주판관(廣州判官)에 이임되었다. 심능규는 강릉에 거주한 사족이다. 자는 사룡(士龍), 호는 호은(湖隱)⋅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월포(月圃),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1859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저서에 월포기(月圃記), 인경부주(仁經附註)가 있다. 이 간찰은 지방관이 그 관할 재지 사족에게 보낸 것인데, 관찰사의 도내 순시와 관련하여 일정을 공유하고 지역민에게 물품 등을 협조받은 사실을 볼 수 있다. 이 간찰의 발급 시기는 윤치용의 재직 시기를 볼 때 1859년 가을 무렵이 확실하다. 강릉 창녕조씨 소장 간찰의 대부분이 심능규 등 삼척심씨 인물들에게 보내진 것인데, 조옥현 가의 외가가 삼척심씨이므로 어느 시기에 다량의 삼척심씨 소장 문서가 조옥현 가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먼저 산행(山行)하느라 답장을 지체한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요사이 흐린 가을 날씨에 심능규가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윤치용은 산해(山海)의 경치를 감상하여 답답한 가슴을 씻어내어 문득 세속의 생각이 없어졌는데 관아로 돌아와서 예전처럼 공무에 파묻혀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관찰사의 도내 순시 일정에 대해 관찰사가 26일에 감영을 출발하여 1일에 강릉으로 들어올 거라는 기별이 오늘에야 도착하였다고 하였다. 이 강릉은 순로(巡路)의 초입이라 모든 일이 난감하거니와 역참은 많은데 재정 상황은 열악하니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심능규가 전에 보내준 포도(葡萄)는 산행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남김없이 썩어 버렸다고 하면서 관찰사를 접대하기 위해 이달 27, 8일까지 두서너 가지라도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추신에서는 알려드릴 만한 서울 소식은 없으며 초택(初擇) 일정에 대해서도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최호, 수집사료해제집7, 국사편찬위원회, 2013
원문
間作山行惠牘虛辱稽謝是歎謹詢日來秋陰靜候增重溸仰且禱記下山海烟霞大踏領略開懷滌襟頓無塵埃之想歸坐篆閣依舊擾擾於朱墨之間浮世閑忙良可浩歎巡部或進或退之說苦無假量卄六離發初一入邑之先奇今日始到此邑處在初頭凡百極爲罔措況站多而力綿難保無頉可悶可悶前惠葡萄雖荷盛念歸而見之已屬腐敗無餘可惜且歎各果節早無以排用於支巡桂林如有餘存雖數三朶趁今卄七八覓惠則可以緊用幸須諒施如何如何餘留不備謝卽日記下尹致容拜京毛無可聞初擇進退亦未聞知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