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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년 이희서 간찰(李羲書 簡札)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4_01_A00008_001
- ㆍ입수처
- 창녕조씨 명숙공종가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서간통고류-간찰(簡札)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미상년 이희서 간찰 / 李羲書 簡札
- ㆍ발급자
-
李羲書(李羲書, 1785~?, 조선)
원문내용: 本倅李羲書(후대에 추기)추정:
- ㆍ수취자
-
심능규(沈能圭, 1790~1862, 조선)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32.2 × 47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미상년 이희서(李羲書, 1785~?)가 심능규(沈能圭, 1790~1862)에게 보낸 간찰이다. 이희서는 강릉부사를 역임한 인물이다. 자는 낙여(洛汝),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1849년 12월 26일에 강릉부사에 임명되었고 1851년 12월에 파직되었다. 이 간찰에서는 이희서가 본인의 이름을 명기하지 않았으나 후대에 소장자가 추기(追記)하였다. 번포(煩逋)란 번거롭게 자신의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말이다. 심능규는 강릉에 거주한 사족이다. 자는 사룡(士龍), 호는 호은(湖隱)⋅신천당(信天堂)⋅천청당(天聽堂)⋅월포(月圃), 본관은 삼척(三陟)이다. 1859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저서에 월포기(月圃記), 인경부주(仁經附註)가 있다. 특히 심능규는 자신의 주요 저술인 인경부주를 보냈는데, 수령을 통해 중요 인사에게 그 내용을 알리고 질정을 받거나 서발문을 받으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서울대 규장각에 인경부주(奎4122-v.1-7)가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볼 때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왕실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강릉 창녕조씨 소장 간찰의 대부분이 심능규 등 삼척심씨 인물들에게 보내진 것인데, 조옥현 가의 외가가 삼척심씨이므로 어느 시기에 다량의 삼척심씨 소장 문서가 조옥현 가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먼저 어제 조용하게 토론한 일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데 오늘 아침 편지를 받고 심능규가 평안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늘 비로소 푸른 하늘을 본 것처럼 위안이 되고 기쁘다고 하였다. 이희서 자신은 병상(病狀)이 여전한데 해가 뜨면 일이 생겨서 수접(酬接)하는 것이 난감하다고 하였다. 다만 아이의 병이 전보다 조금 호전되고 있으므로 근심이 풀린다고 하였다. 조보 2축(軸)과 인경(仁經) 7권이 도착하였다고 하였으며 심능규가 편지로 말한 내용은 가르침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남평현감은 부모상을 당한 것으로 인하여 그 후임이 차출된 듯한데 확실하게 파악할 수 없으므로 질의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다른 데를 통해 상세히 알아보시라고 하였다. 여기에 언급된 남평현감은 안응수(安膺壽, 1804~1871)로서 자는 복경(福卿), 호는 학초(鶴樵)․학산(鶴山),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1849년 6월 17일에 남평현감에 임명되었다.
최호, 수집사료해제집7, 국사편찬위원회, 2013
원문
鏡湖靜座下回納
省封
溟仙堂謝狀上
昨日穩討猶有餘耿卽承審夜謝靜候動靜一例衛重其所慰喜可敵今日之始覩書記下病狀依昨而日出事生酬接難堪奈何奈何兒憂比昨稍勝稍可慰釋爛紙二軸及仁經七𢎥來到而示意當如戒也南平似因遭艱而出代猶未可的知故未敢奉質從他詳探如何如何餘擾姑此不備謝例卽朝記下煩逋【本倅李羲書】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