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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376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토지문기(土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845년 변두집 논 매매 문기 / 邊斗集 畓賣買文記
- ㆍ발급자
-
변두집(邊斗集)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 노 성로(李 老 盛老)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845년 12월 15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道光二十五年乙巳十二月十五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3.4 × 34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845년(憲宗 11) 12월 15일에 변두집(邊斗集)이 이 씨의 종 성로(盛老)에게 210냥을 받고 두 곳의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해제
1845년(憲宗 11) 12월 15일에 변두집(邊斗集)이 이 씨의 종 성로(盛老)에게 210냥을 받고 두 곳의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이다. 1834년 이용구(李龍九, 1798~1837) 준호구 ‘A003_01_A00180_001’ 등의 선교장 준호구 ‘노비질(奴婢秩)’에 비 득녀의 3소생 노 성로 병인생[婢得女三生奴性魯年丙寅(1806?)]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수급자 盛老는 性魯의 동음이의의 표기이며, 상전 이씨는 선교장 이용구의 맏아들인 이회숙(李會淑, 1823~1876)으로 추정된다. 본 문서에서 언급한 이작(二作)은 40지번과 41지번 두 배미[夜味]라는 뜻이다. 그러나 보통 양전(量田)에 표기되어 있는 작(作)은 동일 지번(地番) 내에 구획을 달리하는 배미(=필지)의 의미로, 조선시대 양전의 토지형태는 정사각형(方田), 직사각형(直田), 직각삼각형(句股田), 이등변삼각형(圭田), 사다리꼴(梯田) 등 다섯 종류의 형태만으로 표기하여 측량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형태에 부합하지 않은 전답의 경우에는 방전(方田)이나 직전(直田)으로 재단(裁斷)한 뒤 남은 부분에 대한 구획명으로 이작, 삼작(三作) 등으로 표기하였다. 본 문서에서 언급한 ‘본문기 1장’은 1822년 1월에 이병원(李秉元)이 변익중(邊益中)에게 170냥을 받고 위 논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A003_01_A00369_001’이다. 따라서 변두집은 그의 부친으로 추정되는 변익중에게 위 논을 물려받았으며, 23년 뒤에 40냥이 상승한 값으로 매도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변두집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물려받은 논 두 곳을 팔게 되었다. 매도하는 논의 위치는 정동면(丁洞面) 석회(石回)에 있는 상자(翔字) 자호의 40번과 41번이며, 논의 면적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각각 2짐과 17짐 2뭇 총 19짐 2뭇이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총 1섬 10마지기이다. 변두집은 매매가로 210냥을 받고 성로의 상전인 이 씨에게 위 논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본문기 1장과 함께 영구히 매도하였다. 문서 말미에 ‘나중에 양쪽 사이에서 허튼소리를 한다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으라’는 내용의 추탈담보문언을 명기하고, 논주인 변두집이 본 명문을 작성하고 착명으로 서명하였으며, 이 거래매매의 증인으로 참여한 민 씨의 종 막덕(莫德)은 좌촌(左寸)으로 서명하였다.
- · 김성갑, 『朝鮮時代 明文에 관한 文書學的 硏究』,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참고자료
원문
道光二十五年乙巳十二月十五日 李奴盛老前明文 右明文爲臥事段 吾以要用所致 買得傳來畓 伏在丁洞面石回 翔字四十畓貳負 四十一畓拾㓒負貳束 二作壹石拾斗落只庫乙 折價錢文貳百拾兩 依數捧上是遣 永永放賣爲去乎 本文記一張 幷爲許給 日後彼此間 若有雜談是去等 持此文記 告 官卞正印 畓主自筆邊斗集[着名] 證人閔奴莫德[同人左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