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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8년 초정 자매문기(草正 自賣文記)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306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자매문기(自賣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58년 초정 자매문기 / 草正 自賣文記
- ㆍ발급자
-
초정(草正,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노 정산(李奴 丁山, 개인)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58년 10월 16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乾隆卄三年戊寅十月十六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1.9 × 32.5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758년(영조34) 10월 16일에 초정(草正)이 이생원댁 노 정산(丁山)에게 자신을 팔면서 작성한 자매(自賣) 명문이다. 초정의 자매명문은 같은 해 3월에 1건이 작성되었고, 이 문서와 동일한 날에 작성한 1건의 명문이 더 있는데 내용은 같고 매매가에 차이가 있다. 초정은 자신의 팔자가 기구하여 을해년(1755)과 병자년(1756) 흉년에 부모가 모두 사망하였고, 의지할 데 없던 자신은 유리걸식하다가 마침 이생원댁을 지나게 되었으며 이때 자식이 없던 이생원은 자신을 거두어 기를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자신의 나이가 10여세를 넘지 않았을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시양(侍養) 사촌인 양선만(梁先萬)이 찾아와서 이미 사망한 초정의 아버지에 대한 백골징포(白骨徵布)를 자신이 납부하고 있었으니 이후에는 초정이 네가 담당하라고 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초정은 자신의 매매가를 15냥으로 약속한 뒤에 10냥은 양선만에게 죽은 아버지의 번포(番布) 값으로 주고, 1냥은 오촌 숙부인 김삼룡이 가져갔으며, 나머지 4냥은 부모의 유골을 매장하는 데 쓰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이후 낳게 될 후소생(後所生)까지 아울러 방매한다고 적었다. 초정이 수촌(手寸)을 그리고, 시양 사촌 양선만과 오촌 김삼룡이 증인으로 참여하여 착명을 하였다. 번포는 군정(軍丁)이 번(番)을 서는 대신 바치는 베를 말하고, 백골징포는 이미 죽은 사람을 생존해 있는 것처럼 명부에 등록해 놓고 강제로 군포를 징수하던 폐단을 이른다. A003_01_A00304_001, A003_01_A00305_001과 같은 내용의 문서로, 304가 같은 해 3월 27일에 작성되었고, 305는 10월에 작성되었다. 305와 이 문서는 매매가만 차이가 나는데, 305에서 가격을 지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격에 문제가 있어서 재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3월의 문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작성된 것에는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럴 경우 305와 306문서는 일종의 不忘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원문
乾隆卄三年戊寅十月十六日 李生員奴丁山前明文 右明文爲 吾亦八字奇險 適値乙丙凶歲 父母俱爲轉壑 而他無族屬 故轉展乞食 僅到鏡湖李生員宅是乎則 同李生員主 他無子女是乎等以 見其吾行乞之狀 恰其無告之形 收而養之計 其吾年數 則不過十餘歲矣 千萬意外 吾之養四寸梁先萬爲名人來到曰 汝矣父白骨番布 吾獨自擔當備納 而此後汝旣生存 則汝父之白骨番布乙 其誰當之 此後則汝其擔當云云 則不得已 吾身乙 右人前 折價錢文拾伍兩相約後 拾兩錢段 梁先萬處 以番布價許給 而壹兩錢段 五寸叔金三龍持去 而其餘肆兩段 吾父母掩土時備給之意幷以 相約爲去乎 後所生幷以 永永放賣爲乎矣 日後某邊子孫族類中 如有雜談是去等 持此文 告官卞正印 自賣主草正[同人右寸] 證人養四寸梁善萬[着名] 五寸金三龍[着名] 筆執校生權沃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