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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년 삼척심씨 사우 유사 심실 논 매매 문기(三陟沈氏 祠宇 有司 沈宲 畓賣買文記)
기본정보
- ㆍ자료ID
- A003_01_A00263_001
- ㆍ입수처
- 전주이씨 선교장
- ㆍ자료유형
- 고문서
- ㆍ유형분류
- 문기류-토지문기(土地文記)
- ㆍ주제분류
- ㆍ문서명
- 1761년 삼척심씨 사우 유사 심실 논 매매 문기 / 三陟沈氏 祠宇 有司 沈宲 畓賣買文記
- ㆍ발급자
-
심실(沈實)
원문내용:추정:
- ㆍ수취자
-
이내번(李乃蕃)
원문내용:추정:
- ㆍ발급시기
-
1761년 3월 9일간지연도:왕력:추정시기:본문: 乾隆二十六年辛巳三月初九日
- ㆍ형태정보
-
점수: 1크기: 51 × 45.8접은크기: ×서명:인장종수:보존상태:언어:자료형태:
- ㆍ정의
- 1761년 3월 9일에 삼척심씨(三陟沈氏)의 사우(祠宇) 유사인 유학 심실(沈宲)이 유학 이내번(李乃蕃, 1703~1781)에게 16냥을 받고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
- ㆍ기타사항
- ㆍ현소장처
- 율곡연구원
- ㆍ지정문화재
- 이름: 분류: 지정년도:
- ㆍ수장고
- 이름: 서가위치: 단위치:
해제
1761년 3월 9일에 삼척심씨(三陟沈氏)의 사우(祠宇) 유사인 유학 심실(沈宲)이 유학 이내번(李乃蕃, 1703~1781)에게 16냥을 받고 논을 매도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문기다. 삼척심씨 문중은 조상인 어촌(漁村)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의 시호(諡號)를 청하기 위해 여러 차례 상경하는 데 드는 많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우의 위답(位畓)을 팔게 되었다. 매도하는 위답의 위치는 선교장(船橋莊) 인근의 일가남(一加南)에 있는 우자(虞字) 자호의 60번이다. 위답의 면적은 수확량을 기준으로 하면 7짐 6뭇이고, 파종량을 기준으로 하면 10마지기이다. 심씨 문중은 이내번에게 매매가로 16냥을 받고 올해부터 영구히 매도하되, 본 위답의 소유권을 증명하는 본문기는 다른 논밭이 함께 기재되어 있는 분재 문서이기 때문에 이내번에게 넘겨주지 못하였다. 문서 말미에 ‘나중에 여러 자손 중에서 혹시 허튼소리를 한다면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는 내용의 추탈담보문언을 명기하고, 매도당사자인 사우 유사 유학 심실과 심상곤(沈尙坤), 이 명문을 작성한 필집 유학 심와(沈木+卨)가 각각 서명하였으며, 거래증인은 생략하였다.
『승정원일기』를 통해 본 문기와 같은 해인 1761년(영조 37) 4월 17일에 심언광에게 ‘문공(文恭)’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본 문기는 사우위토를 매매함으로써 시호를 청하는 데 소용되는 비용을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 사례를 통해 당시 어촌의 후손들이 조상의 시호를 얻기 위해 노력했던 과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의 본관은 삼척(三陟), 자는 사형(士烱), 호는 어촌(漁村), 시호는 문공(文恭)으로 아버지는 예조좌랑 심준(沈濬)이며, 찬성 심언경(沈彦慶)의 동생이다. 시·서·화에 능하였으며, 151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지평·정언·홍문관교리 등의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1536년 이조판서에 제수되고, 이어서 공조판서에 제수되어 김안로의 비행을 비판했으나 김안로의 미움을 받아 이듬해 함경도관찰사로 좌천되었다. 김안로와 그 일당이 축출되자, 우참찬에 올랐고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大尹)일파가 집권하면서 탄핵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였다가 복관되었다.
원문
乾隆二十六年辛巳三月初九日 幼學李乃蕃前明文成上 右明文爲 惟我門中 以漁村大監請諡事 以累次上京 浮費太多 萬無周章財力之路乙仍于 不得已同位畓一加南虞字六十畓柒負陸束十斗落只廤乙 折價錢文拾陸兩 依數捧上是遣 今年爲始 永永放賣爲乎矣 本文記段 他田畓幷付乙仍于 不得許給爲去乎 幸日後諸子孫中 或有雜談是去等 持此文告官卞正印 祠宇有司幼學沈宲[着名] 沈尙坤[着名] 筆執幼學沈木+卨[着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