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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해제
미상년 발급자 미상의 간찰 별지이다. 기로소(耆老所)는 경관직 중 하나로 ‘기사(耆社)’라고도 하며, 보통 60세 이상의 임금이나 실직에 있는 정2품 이상의 문관들이 여기에 들 수 있었는데, 이 문관들을 기로소 당상이라고 했다. 본문에서 언급된 기로소의 일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이를 통해 당시 기로소와 관련한 어떠한 사건이 있었고, 이를 둘러싸고 오기정, 비서승 정세원, 탁지부 비서과장 김병흡 등과 같은 인물들이 얽혀 있었던 정황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된 오기정은 자세한 이력은 미상이나, 1898년, 1902년, 1903년에 각각 수원전보사주사(水原電報司主事)에 임명된 사실이 있다. 또한 정세원(鄭世源, 1856~?)은 본관은 연일(延日), 부친은 정해륜(鄭海崙)으로, 성균관대사성‧승지‧이조참의‧비서승‧궁내부특진관(宮內府特進官) 등을 역임하였는데, 특히 그가 비서승에 임명된 시기는 1896년 이후이다. 김병흡(金炳翕, 1861~?)은 자는 형빈(亨彬),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교리‧수찬‧응교‧사간‧장령‧탁지부재무관(度支部財務官) 및 참서관(參書官) 등을 역임하였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기로소(耆老所)의 일은 오기정(吳基鼎)이 비서승(秘書丞) 정세원(鄭世源)에게 그 폐단을 이야기 한즉 몇 차례 왕복하여 허락을 받게 되었다고 하였다. 며칠 뒤 오기정이 정세원의 집에 갔더니 탁지부 비서과장 김병흡(金炳翕)이라는 자가 이를 꾸짖고 헐뜯기를 끝이 없을 정도로 하기에 오기정이 “일이 바른 데로 귀결되지 않는다면 강향(江鄕, 강릉)의 백성들이 필시 난리가 날 염려가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고, 김병흡이 답하기를 “비록 난리가 일어나더라도 탁지부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했다는 말 등을 언급하면서, 이 어찌 벼슬하는 자가 마음 부리는 화두이겠냐고 하며 탄식할 만하다고 하였다.
- · 『승정원일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원문
耆老所事 吳基鼎說弊于秘書丞鄭世源 則往復于度 大快得諾許矣 數日後吳往鄭秘書家 則度部秘書課長金炳翕者 無限詆毁 故吳曰事不歸正 江鄕之民 必有離亂之慮云 則金炳翕答曰 雖起亂離 何關於度支乎云 此豈仕人者之做心上話頭乎 可歎可歎